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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Jan 30. 2024

새해

1월 3일 수


새해라고 별거 있나. 그냥 사는 거지.


연말연시는 늘 그렇듯 주변 사람들, 올해는 좀 달랐나, 아무튼 주변 사람들이라 하면 교회 사람들, 일하다가 알게 된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바쁘진 않았다만, 마음은 늘 그렇듯 분주하다. 1월 1일은 교회에서 보냈다. 늘 그렇듯. 종소리는 군대에서 티비로 들어본 게 전부다. 항상 교회에서 1월 1일을 맞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옆 사람과 인사하는 것, 24년 간 이어진 연례행사다. '주님의 축복 어쩌구..' 이런 식이다. 싫진 않다.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교회를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았다. 새벽에 변기를 붙잡고 전날 먹은 걸 다 뱉어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곰곰이 뭘 잘못 먹었나 생각을 해봤는데, 이틀 전에 먹은 굴 때문이었나, 맛있게 먹어서 그만한 대가를 치른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액땜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전날 먹은 까르보나라가 너무 맛이 없어서 굴보다는 오히려 그쪽이 더 신경이 쓰였다. 장담컨대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다. 웬만하면 밖에서는 사 먹지 않겠다는 게 새해 다짐이 되었다. 적어도 파스타는 말이다.


그러고선 다음날 출근했다. 컨디션이 좋진 않아서 기분 좋게 출근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워낙 정신없었던 밤을 보낸 터라 새해 첫날이라는 것에 별 감흥도 못 느꼈다. 애초에 손님도 별로 없어서 일이 힘들진 않았다. 새해 전날이 바빴다고 한다. 사장님 말로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모쪼록 친구들을 만났다. 십 대를 통으로 같이 보낸 친구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대화주제는 바뀌었지만 나이에 떠밀려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우린 송지은의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을 들었다. 친구들은 예쁘지 않다. 나는 빠른 년생 이어서 스물네 살이다.


그렇게 오늘은 1월 3일이다. 작년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크게 목표도 아직 없다. 새해 준비를 소홀히 한 내 잘못이다. 복학을 할지 휴학을 일 년 더 할지 결정도 못했다. 그래도 글만큼은 꾸준히 써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차근차근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난 항상 글을 쓸 때는 공책을 폈는데 어째서인지 최근 들어 노트를 펼치면 답답한 마음에 글이 써지지 않더라. 그래서 노트북을 열었다.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움직인다면 언제라도 공책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름지기 글은 응당 펜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짧고 굵은 연말연시다. 오늘 아침에는 새벽기도도 다녀왔다. 끝나고 교회 동생들이랑 국밥 한 그릇 먹었다. 오늘도 출근했다. 근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사장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하고선 잠깐만 잔다는 게 세 시간을 넘게 자버렸다. 약기운 때문인가. 애당초 새해맞이가 어영부영이 되어버린 탓에 급하게 플래너를 주문했다. 사실 작년엔 내가 직접 다이어리를 만들어서 써봤는데, 역시 남이 만들어 놓은 게 좋더라. 크게 고민을 많이 하고 만든 것도 아니라서 쓰기도 불편했다. 플래너인지 일기장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이 되어버려서 올해는 확실하게 구분지어서 쓰기로 했다. 일기는 항상 공책에, 계획은 플래너에. 꾸준한 습관으로 자리 잡길 소망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졌다. 치킨 먹었다. 내 기준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은 네네 레드마요 순살이다. 자극적인 소스 맛에 먹는 것이긴 한데, 뭐랄까 한 번씩 생각이 난다. 결국 돌고 돌아 레드마요다. 군대에서 처음 먹었는데 그 추억 때문일까. 애초에 추억이 맞긴 할까. 뭐 많이 웃다 왔으니 '좋은 기억' 정도는 되겠지. 영화도 봤다. '세렌디피티'. 연말에 봐야 제격이긴 한데, 굳이 타이밍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발전하려면 우둔할 정도로 매달려라' 이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에피테토스가 한 말이란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새해맞이가 늦어진 만큼 속도를 내야겠다. 목표도 세우고, 계획도 세우고,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대충의 청사진이라도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걸을 수 있다. 속도가 아니라는 방향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세기면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모든 일에 임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은 많지만 어찌 되었든 이미 시작된 한 해, 우선 살아봐야 본전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살았으면 그냥 사는 거지'


작년도 살아남았으니 올해도 사는 거다.


어제도 버텼으니 오늘도 움켜쥘 수 있는 거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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