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Jan 30. 2024

불안

1월 4일 목


불안은 항상 내 삶과 발을 맞췄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든, 떠밀려온 중압감이든, 세상에 내놓은 것 없이 당장의 요동치는 내일을 바라본 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라는 공간에 내가 있다면 나는 간신히 잡념들에 낑겨 숨만 쉬는 수준이라고 할까. 그런 불안함 속에서도 막연하게 잘 될 거라는 믿음은 있다만, 아니 있었지만, 요즘 들어 그마저도 희미해져 정말이지 망망대해 속을 표류하는 비극의 화자를 자처하는 중이다.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고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날의 허송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내가 뒤진 만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인색함만 느낄 뿐이다.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때로는 주어진 운명에 몸을 기대는 건지 운명에 맞서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났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며 굳은 심지에 불을 지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스패로우는 데비존스의 크라켄에게 먹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영영 갇혀버리는 저주를 당한다. 한평생 모험과 도전으로 채워나간 자아인지라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별안간 영혼부터 곪아 죽은 신세가 되겠지. 무언가를 해치우며 살아가는 투쟁의 삶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세상에 혼자 남는 고통은 감히 죽음을 괄목하는 저주다.


불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력함'에서 비롯되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슴에서 피어나 사지를 마비시키는 보이지 않는 독침이다.


이미 한 발 헛디딘 사람에게 있어서 불안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주변의 목소리는 커진다. 나는 한 없이 작아진다. 환경을 탓하다가도 결국 과녁은 내가 된다. 이루지 못한 꿈이 된다. 원치 않는 손님으로 들이닥치는 괘념이다. 무한을 탐하는 유한한 삶이다.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는 한이 있을지라도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은 있기 마련이다. 언제부터 한 치 앞을 내다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만, 눈을 치켜세우고 뚜렷하게 오늘을 직면해야 한다. 지금껏 피부로 느낀 삶을 미루어 보았을 때 쉬운 일은 하나도 없더라. 필사적으로 나를 지켜내며 커져가는 생각과 몸집을 감당해 낼 체력을 길러야 한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포장하는 우둔함을 무기 삼아 무식할 정도로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주변을 다잡는 일이 중요하다.


멍청하고 한심해 보여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밀도가 중요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