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SAY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현 Jan 30. 2024

쇼츠

1월 15일 월


내일까지 30분 남았다. 이 시간엔 항상 일기를 쓴다. 하루의 끝을 맨 정신으로 맞으면 오늘은 나름 괜찮은 하루였노라 판단한다. 맨 정신이라고 해서 벗은 정신인 날에는 술이나 진탕 마시며 골골댄다는 건 아니다. 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만 취하지 않는다고 항상 깨어있는 법은 없더라. 그놈의 쇼츠, 릴스 어쩌구 숏폼. 과도한 도파민에 정신이 아득해지면 머리가 둔해지는 느낌이다.


과잉생산의 시대다. 세상엔 뭐든 많다. 뭐든 다 포화상태다. 쇼츠를 계속 스크롤하면 끝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우주가 영역을 확장하듯 사용자들의 정신을 아득하게 빨아들이며 몸집을 키워나가는 소셜미디어는 마치 SF 장르에 등장할법한 미지의 무시무시한 생명체를 연상케 한다. 게걸스럽게 몸집을 불려 세상에 위기를 가져오는 괴물 같은 거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괴물은 과학자들의 부주의로 인해 만들어진다. 계속해서 리메이크되는 고질라도 핵폭발로 인해 방사능에 감염된 도마뱀이라는 설정은 변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루를 기록하고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하는 미디어 영역의 사회가 인간의 부주의 혹은 욕망의 실타래가 마구 엮이게 되어서 모양새가 이상해진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막 훈련소를 마치고 핸드폰을 만진 이등병이 접속한 인스타그램엔 낯선 영상들이 피드를 채웠다. 야시꾸리한 춤 같은 것들. 새로운 자극의 회로가 열렸다. 얼마 뒤 도파민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영화 속 괴물은 인간의 실수로 만들어진 결과치라고 하지만 돈 맛을 아는 현실세계의 인간은 철저한 계산과 연구 끝에 숏폼이라는 괴물을 세상에 내보였다.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욕망 덩어리. 모두의 실수인 듯, 모두가 지배당하는 아이러니. 현대판 리바이어던인가.


정말이지 나는 자극에 약한 사람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대충 스토리를 훑어본다. 힘을 주어 살펴보는 느낌은 없다. 요즘엔 게시글도 잘 안 본다. 대충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사는 모양을 스치면 나도 모르는 새 돋보기 아이콘을 누른다. 옷 잘 입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춤추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영상 등등 다양한 선택지를 거쳐 본능에 충실한 나는 또 모르는 새 가장 이쁜 여자가 나오는 네모를 클릭한다. 입을 벌리고 스크롤한다. 내리고, 또 내리고, 또 내리고, 몇 분 지났을까. 정신은 몽롱하다. 깨끗한 물에 검정 물감 한 방울, 금세 탁해진다. 눈에는 초점이 없다. 이내 현실로 돌아가자니 의욕이 사라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3시간을 쇼츠만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의 일이다. 평일 개인정비 시간은 3시간이다.


과잉생산과 정보과부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대가 아닐까. 세상은 온통 탈이 났다. 아니다. 탈 난 채로 살아가는 건 결국 나뿐인가. 이내 스스로 한심하다 생각하고 인스타그램을 급하게 지웠지만, 내일이 되면 히죽거리며 대충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진 한 장 찍어서 스토리에 올리고 좋아요를 신경 쓰고 스크롤, 또 스크롤하는 나 자신이다.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온통 정보다. 없는 게 없다. 건너 건너 친구가 된다. 접속할 수 없는 지식은 없다. 자신의 생각을 토로한다. 게시한다. 버튼을 눌러 공감한다. 받아들인다. 흡수한다. 주입당한다. 개인은 한없이 작아지지만 사회는 점차 몸집을 키우며 개인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 소셜미디어는 소통하지 않는다. 찍어내고 주입한다.


이렇게 자기혐오를 뱉어내면 더 잘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얻을까. 이마저도 생각하지 못하고 뿜어내는 불순물일까. 나는 30분 전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제발, 인스타는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하지 말자. 똥 쌀 때 핸드폰 갖고 들어가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