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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r 13. 2024

사랑은 타자화하지 않는다

로봇드림

사랑의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는 시각에서부터 비롯된 자기 투영을 영화는 시도한다. 택배상자로 전해진 우정, 로봇의 세상은 도그가 된다. 도그와 함께 먹은 음식, 산책한 거리, 함께 들은 노래, 로봇의 몸이 망가지게 된 해변가에서 마주해야 했던 이별까지. 짧았지만 로봇은 도그와의 시간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우정을 배우며, 이별을 경험하고 상실을 겪는다. 해변에 누워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각각의 계절을 보내면서 로봇은 도그와 나눴던 마음을 회상하고 본인의 삶에 투영한다. 투영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로봇이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도그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이미 떠난 인연임에도 이를 인정하기까지는 그 사람을 만나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겪는다.


로봇에게도 새로운 인연은 찾아온다. 해변에서의 수난을 겪고 망가진 본인의 몸을 고쳐준 너구리 라스칼. 도그와 나눴던 시간처럼, 어쩌면 도그와 함께 한 시간보다 더 진한 농도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음악을 좋아하는 라스칼은 망가진 로봇의 몸통을 커다란 붐박스 스피커로 바꿔준다. 그렇게 로봇의 기억 속 도그와 함께 들었던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은 라스칼의 새 플레이리스트로 지워진다.


추억은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때아닌 아픔을 동반한 추억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을 산다.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바라본다. 나무가 긴 시간에 걸쳐 기묘한 나이테를 그리듯 사랑 또한 찰나를 스치며 단단해지며 각자의 무니를 새겨나가기 마련이다. 새로 들인 반려로봇과 거리를 걷는 도그를 발견한 로봇은 그간의 추억을 부정당하는 듯 상실에 빠지지만 하릴없이 슬퍼하지 않는다. 이겨내기를 결심한다. 라스칼이 달아준 스피커로 도그와 함께 들었던 September에 맞춰 춤을 춘다. 이내 라스칼을 바라본다. 오늘의 인연에 집중하며 사랑과 우정을 다져갈 것을 다짐한다. 로봇 나름의 헤어질 결심을 새긴다. 사랑은 한결같지만, 이를 채우는 단어는 개인과 개인을 투영한 대상의 이야기로 문장 하나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화는 대사가 없다. 등장인물들의 눈빛, 제스처, 색감과 화면전환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밥을 먹거나 음료를 마셔도 망가지지 않는 로봇, 자잘한 설정은 무시한다. 영화의 영문 제목이 Robot Dreams라는 점에서, 화면 속 맨해튼 마천루에는 쌍둥이 빌딩이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는 점에서 영화는 단연 가장 따듯한 영화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관계에의 결핍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사회의 암시도, 로봇과 동물의 사랑이라는 사회적 다양성의 편견을 깨부수는 일도 아닌, 사랑과 성장이다. 나와 너를 초월하는 사랑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정이고, 연민이고, 이해며, 결핍이라 치부한들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있기 마련이다. 내 앞의 누군가를 감히 타자화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연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로봇과 강아지의 우정을 그린 영화, 만나고 헤어지고, 웃다가 울고, 잊었다가 떠오르고, 마주쳤다 비로소 극복하는 성장기. 첫 입은 달콤하면서도 후미에 쌉싸름함이 느껴지는 묘하게 누그러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Remember

how we knew

love was here to stay.

사진 출처: https://youtu.be/0CHV_ZDlhrA?si=F09xirDPARL5gC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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