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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r 18. 2024

그는 하늘 높이 날았을까

버드맨

한 때는 이름을 날리며 떼돈을 벌어들인 할리우드 배우 리건 톰슨. 그가 연기한 슈퍼히어로 버드맨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대중에게 잊힌다. 아니, 가벼워졌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TV 속 인터뷰에서 떵떵거리며 등장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보며 양산형 슈퍼히어로라며 허를 두르지만, 그조차도 수년 전에는, 본인이 수트를 입고 떼돈을 벌었을 시절에는 그보다 못한 잠깐의 명성이었음을 본인도 알고 있다. 그 시절의 깃털 같은 명성의 무게감은 대중 혹은 본인에게도 너무나도 가벼웠던 탓인지, 곤두박질보다는 가벼이 올랐다 가벼이 내려앉은 정도의 서사였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며 없는 돈을 끌어모아 극단 데뷔에 기를 쓰는 이유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가볍지 않은 명성을 얻겠다는 객기 혹은 집착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극단을 꾸린 배우들은 무명일뿐더러, 뭐라도 하려는 리건의 행보에 대중의 반응은 비난보다 조롱에 가깝다. 한 물 간 명성이 가져다주는 맹탕에 조미료 같은 자극에, 이에 집착해 가족도 내팽개친 무책임함에 질린 아내는 그를 떠나고, 이내 무관심 속에 자란 딸은 아빠를 무시한다. 그렇게 겨우 영입한 유명배우 마이크는 실없는 소리나 해대면서 본인의 예술적 깊이를 리건에게 강요한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리건은 자리를 박차고 흥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걷는다. 계단을 오르고 대기실 문을 박차듯 열고, 그의 산만함에 매니저를 당황스럽게 하고, 잠자리 애인에게 상처를 주고, 딸과의 관계는 악화된다. 애초에 커진 숨구멍을 달래 봤자, 걸어봤자, 무대에서 대기실, 대기실에서 의상실, 의상실에서 다시 무대 따위가 전부다. 그렇게 애써서 향한 술집과 거리에는 리건을 혐오하는 평론가가, 발가벗겨진 본인 몸을 조롱하는 대중뿐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타인에의 기대치가 아닌 저만치 자란 본인의 자의식이다. 한 번 커져버린 본인 스스로를 죽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에 리건은 도전한다. 사라진 명성의 잔상마저 흐려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대본을 쓰고 극단을 꾸린다. 무명배우, 변태동료, 섹스파트너, 애써 붙잡아둔 매니저 사이에서 본인의 우유부단함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출발선 뒤에서의 초조함이라는 말이 있다만, 이미 결승선을 지나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인의 작은 마음은 이내 커진 몸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래서 리건은 자리를 박차고 걸었을까, 같은 건물을 오르내리며 그의 마음 구석구석을 헤매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을 때 그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염력, 하늘을 나는 능력 등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자의식에 채우지 못하는 꿈을 들춰낸다. 그렇게 맞지 않는 옷에 체급을 키우는 리건의 마음은 점점 집착이 된다. 알몸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실탄이 장전된 총을 소품과 바꿔 친다. 끝에 본인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결국 그는 명성을 얻었을까. 떠난 아내와 화해하고, 딸의 보살핌을 받았을까. 총알은 코끝을 스치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리건은 유명해진, 다시 복기한, 어쩌면 전에 가져보지 못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병실 안 창문 밖을 내다본다. 우거진 건물 숲 위로 펼쳐진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렇게 그는 자의식과 하나 된다. 들려오는 목소리 뒤에 보이는 '버드맨'을 지우고선 리건 톰슨 본인이 된다. TV에선 그를 다룬다. 기자들은 그를 찾는다. 딸은 그를 사랑한다. 아내는 그를 돌본다. 화살을 겨눴던 평론가는 찬사를 쏘아 보낸다. 그는 하늘 높이 본인 몸을 던진다. 그는 하늘 높이 날았을까?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애인을 앞에 두고, 애인 옆에 사랑을 나누던 낯선 남자를 앞에 두고 주인공은 총구를 본인 머리에 겨눈다. 그러곤 이렇게 말한다.


"난 존재하지 않아"


리건이 연기한 극의 마지막 대사다. 그는 그토록, 삶을 공들여서 대중에게 잊히지 않으려 애썼다. 잊히기보다, 그가 원하는 본인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악착같이 평판에 집착하고, 회기를 꿈꿨다. 사랑받았음에 삶을 이뤘다는 소설가의 작품을 연기했다. 우리는 그토록 타인이 중요한가?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타인은 중요하지 않다. 자의식이다. 결국 삶은 멋대로 몸집을 키우고 줄이는 의식 너머의 스스로와 싸움을 벌이는 일이다. 무엇이 중심인지, 무엇을 위함인지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증명해 내기 전까지는 자의식이다.


난 당신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매일 다른 남자가 되려고 애쓰면서 산다고

날 사랑하지 않아?

앞으로도 절대 안 할 거고?

난 존재하지 않아

사진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uJfLoE6h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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