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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노의질주 Jul 23. 2023

Touch Wood


  “됐어?”

  지난번에 같이 산 로또 당첨을 물어보는 친구의 메세지다.

  안 됐지. 됐으면? 당첨이 됐으면 난 친구에게 얘기했을까? 농협 본사에 가서 종이를 건네고 당첨금을 수령하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커녕 스스로도 믿지 못했을테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소식 앞에서 ‘안정화’의 기간을 갖는다. 어떤 행운이나 행복이 안전하게 금고에 들어갔을 때에야 안심하고 주변에 알린다. 취업 성공 후 몇 주가 지나고 나서야 sns에 소식을 알린다던가, 아픈 게 나은 후 경과를 지켜보고 나서야 완치 소식을 알린다거나. 혼인신고를 결혼식 한 달 후에 한다거나, 마지막 표까지 열어보고야 당선 축하를 받는다거나. 안정화의 기간을 갖는 습관은 생각보다 도처에 있다.

  이것은 만에 하나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상처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미래에 ‘마음을 대비하는 기간’이다. 어쩌면 맘속 깊은 곳에는 다른 사람의 연민을 사기 싫은 두려움이 깔려있을도 모른다. 축하 파티의 주인공에서 안타까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언제쯤 맘 놓고 편히 기뻐할 수 있을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후에, 그리고 예측가능한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비로소 안정화의 기간이 끝난다.

 

  그런데 실은 내가 사실을 주변에 알리든 알리지 않든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누설 한마디가 내 운명에 영향을 끼칠리 없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나의 운명을 바꾸는 그런 일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하지만 우린 마치 운이 닳기라도 하듯이 일단 아껴둔다. 누가 금방이라도 줬다 뺏을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좋은 소식이나 행운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그것이 비록 내 힘과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여도 말이다.

  인간의 조금은 귀엽고도 가엾은 이 마음은 국제적이어서 영어권에도 비슷한 상황에 흔히 쓰이는 표현이 있다. ‘touch wood' 또는 ‘knock on wood’라는 말을 주로 좋은 소식이나 경과, 결과 등을 얘기하는 문장 바로 뒤에 붙이는 것이다. “아직까진 잘 돼가고 있어, touch wood.” 이런 식이다. 심지어는 이 말을 뱉은 후 짧은 시간 안에 나무나 나무 재질의 사물에 손을 갖다대거나 두들기기까지 해야한다. 내가 경험한 것은 영어 표현뿐이지만 전세계 많은 나라들에 비슷한 관습이 있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조금 다르게 재수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정타지 말라는 뜻에서 “나무잡고 퉤퉤퉤"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touch wood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기독교의 십자가가 나무로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가축이나 물건 경매를 하던 18세기의 경매장에서 나왔다는 주장이었다. 누군가 경매에 이기면 경매 진행자가 망치를 탕탕 하고 두드리는데, 이때 사용되는 망치와 받침이 나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매 진행자가 어떤 이의 입찰에 ‘touch wood'했다는 것은 좋은 결과가 완전히 정해졌다는 ‘확정’을 의미했다.

  

  여기서 재밌는 건 망치를 두드리는 게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행운이, 운명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확실해진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운과 행복에 모든 마음을 맡기지 못하는 심리가 조금은 “귀엽고 가엾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위에서 인간들을 바라본다면 그렇게 느낄 것 같다. 혼자 무슨 말을 뱉고는 나무 조각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작은 인간을 상상해보라.

  이 마음의 끝에는 결국 나의 운명에 대고 탕탕 결정을 내리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내멋대로 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받아들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걸 인정하는 행위는 신이나 정령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인간의 겸손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내가 하고픈 말은..

  그러니 나무의 정령이여, 인간을 귀엽고 가엾게 봐주시어 행운을 앗아가지 말아주소서. 줬다 뺏는 것은 없습니다.





매거진 42 vol.2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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