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의 망령

윤씨 내란에 이용당한 707특임단

by 박스턴

20여년전 특전사 사령부에서 군생활을 할 때 707특수임무대대 (현 707특수임무단) 요원들 훈련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특전사 예하 여단 병력 중 최고의 최고들만 모아둔 특수부대의 특수부대. 전쟁나면 바로 김정일 잡으러 갈 준비가 돼 있는 대한민국 최정예 대테러 요원들이라 했다.


부대에서 707대대 백호 마크를 단 그들과 어쩌다 마주치면 3성장군인 사령관을 마주칠때 만큼 긴장됐던 기억이 난다. 나름 낙하산도 타고 군복에 날개도 달고, 휴가 나가면 일반병들 앞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곤 했지만 707대대 요원들 앞에서는 그들과 같은 검은 베레모를 쓰는게 머쓱할 수 밖에 없었다. 병장 정도 되면 원래 군기가 빠져서 어떤 간부를 만나도 대충 인사하고 지나가곤 하는데 707대대 부사관들 앞에서는 절도있게 예를 표했던 기억이 난다. 한소리 들을까 두려웠던 것도 있지만 사실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나면 없던 리스펙도 저절로 생겨난다. 적이 있다고 가정하는 곳 어디에든 자기 몸을 그냥 내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나 두드리며 매일 전역할 날만 세고 있던 나와는 차원이 다른 봉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휴일에 면회실에서 피자랑 치킨 실컷 먹고 역시 사제 음식이 최고라며 배두드리고 내무실로 복귀할 때, 그들은 어김없이 체력의 극한에 다달았을 때나 나올법한 기합과 신음 그 사이의 어떤 괴음을 내지르며 자동차 타이어를 줄에 메달고 언덕 위를 전속력으로 뛰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윤씨 내란에 이용당했다. 그들에게 실전 상황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단 한번 있을 수 있는 실전에 확고히 대비하는 것이 그들 일상의 전부이다. 출동 즉시 적을 타격하고 제압하는 것. 그러니 그들이 헬기를 타고 작전지역에 내려서 마주한 것이 적이 아니라 우리 국민, 그것도 국회의원들이었을 때 느꼈을 자괴감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명예로만 먹고 사는 그들이 받은 상처는 평생 치유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윤씨는 미친놈이라 치자. 기본적 현실 인지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저해된 심각한 망상장애가 있음이 확실하다. 탄핵이든 여타 방식의 임기단축이든 그는 언젠가 끌려내려올 것이고 감방에서 면회 한번 와주지 않는 김건희만 애타게 찾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태를 바로 수습하고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도 권력에 눈이 멀어 탄핵을 거부한 자들은 미치지 않았다. 얄팍하지만 냉정한 셈을 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역사가 꼭 그들을 그렇게 기억하고 단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재명을 지지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어떤 정당이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다시 민심을 찾아 오면 된다. 어떤 대통령이든 불법을 저지르면 또 탄핵하고 법정에 세우면 된다. 그것이 헌정 질서이다.


공수부대의 역사는 명예롭지 못했다. 국민의 신뢰를 수십년의 세월에 걸쳐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수 많은 헌신과 희생에도 군사독재 시절 계엄군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윤씨는 멀어져 가던 그 망령을 도로 불러 그들 바로 앞에 세워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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