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본 내 사촌 남동생.
어렸을 때 처음 가본 대전이라는 낯선 곳에 내려
내 팔뚝보다 굵은 설탕가득 묻혀진 핫도그 하나를 받아 들고 그 사람 많은 터미널에서 엄마를 잃어버려 눈물 범벅이 되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 아이의 집에 도착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표준 말과 착하게 생긴 우리 사촌 남동생이 나는 참 좋았다.
옥천의 큰 아버지 댁에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르게 보였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난 겨우 7살었는데...
우리는 술래잡기도 하고 불어오는 따뜻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큰 고무 대야에서 같이 물놀이를 했다.
깔깔깔...
하하하하...
파란하늘에 우리 해맑은 웃음 소리가 가득 했었다.
하루 종일 웃고 뛰어 놀다가 저녁이 되어
한 방에서 이불을 깔고 함께 잠이 들었다.
그 아이의 잠자는 옆 모습은 그렇게 어린 아이인 나에게는 참 설레고 좋았다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명절 때 마주 할 때마다
둘이 논두렁을 걷기도 하고 이런저런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었다.
가족으로서 묶여 있었지만 이성의 감정이 불가하다는 사실 따위는 그 당시 내게는 모르는 사실이었고 그저 그 아이가 좋았다.
우리는 큰 방안에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 아이와 나란히 옆에서 잠들었고 가끔은 잠든 그 아이의 손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 내게는 둘째 큰아버지가 어린 세 명의 아이를 남겨두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고 이 후로 나는 그 아이를 자주 보지 못 하였다.
간간히 들려오던 그 아이와 그 여동생의 소식만 접했던 어느 날.
그 아이는 서른 중반 쯤에 내게 연락을 하였다.
여전히 나긋나긋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고 내 마음속에서는 그리움이 묻어 났다.
결혼했다고...
아이도 둘이나 있다고...
나는 어린 시절의 그 아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산다는 사실이 너무 새롭기도 하고 궁금했다.
그때는 진짜 대전으로 동생을 보러 가고 싶은 강한 마음이 들 정도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모르는 전화가 떴다.
평소에는 어떤 번호이든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받지 않는 나였는데 왠지 받고 싶었던 건 왜 일까?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서너마디 하고보니 그 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역시나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당장 동생을 보기로 약속을 잡았고 어제 우리는 함께 술자리에서 동생과 나는 20년만에 조우하게 되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가득한 나의 얼굴이 동생에게서도 반사되어 내게 전해졌다.
대전에서 직장을 옮기면서 올라오게 된 부천. 서울까지의 출퇴근 시간에 쫓겨 자신의 시간은 전혀 없는 2년여의 시간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와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지금의 공허함이 달래지지가 않아 그는 다른 마음도 든다고 했다.
나는 묵묵히 들어 주었고 동생은 내게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거리는 자신이 무척이나 쑥스러운 듯 자꾸만 망설였다.
나와 겨우 두 살차이인 동생.
함께 40대를 지나왔지만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였지만
40대의 가장으로서의 남자인생이 얼마나 외롭고 무미건조한지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동생에게는 처음이라 무척이나 낯설기도 하고 혼자만의 고민이라 여기는 동생의 생각들을 찬찬히 들어 주었다.
한참 술 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나서야 나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솔직한 나의 결혼생활을 얘기 해 주었고 동생은 적잖이 놀라는 모양이었다.
동생에게 나는 말했다.
4년 정도만 잘 참고 지내면 그런 공허함은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 못 참고 다른 사랑을 꿈꾸거나 가볍게라도 다른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너만은 행복한 너의 것들을 망치지 말고 지금 잘 견뎌내라고...
지금의 내가 슬프거나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생은 일찍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버거운 인생을 살아온 것을 아는 나로서는 소박하지만 밝고 예쁘게 빛나는 녀석의 행복을 오랫동안 지켜주고 싶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술 친구도 되어 줄 수 있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 주겠노라고...
지금 잘 지나가면 나중에 지금의 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밖으로 나가봐야 네가 기대하고 있는 사랑이나 즐거움은 없다고 말해 주었다.
나의 어린 시절 예쁘고 부드러운 미소의 미소년이었던 동생은 어렸을 때의 모습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큰 아버지의 흰 머리를 빼닮아 있었고 어렸을 때의 생김이 똑같았다.
어렸을 때의 이성적인 설램은 아니지만 좋은 친구로 함께 40대를 지내게 되어 무척이나 다행이었고 행복했다.
얼마나 자주 보면서 지내게 될지는 몰라도 앞으로 함께 할 즐거운 시간들을 기대하며 택시를 태워 보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를 먼저 보냈어야 했는데 마음에 걸린다면서....
역시..아름다운 녀석...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