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조용히 부모노릇 할께요..
택시 미터기가 3,190원을 가리킨다.
기사님은 200원은 됐다지만 나는 동전지갑에서 200원을 챙겨 드린다.
기사님은 고맙다며 웃으신다..
나도 따라 웃으며 운전조심하시라며 내린다.
택시기사라는 직업은 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직업이셨다.
내성적인 성격에 나름의 고집도 있으신 아버지는 늘 친구가 별로 없으셨다.
취미도 혼자 낚시하시거나
집에서 뭔가 뚝딱뚝딱 만드시는 것이었다.
한번은 일 하시고 돌아오셔서
한잔 하시는 아버지 옆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내게 술을 권하셨다.
나는 티비를 끄고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별다른 말 없이 한 두잔 드시면서
아버지는 택시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셨다.
건강도 좋지 않고
너무 사람이 무섭고 힘들다고 하셨다.
아버지라는 자리에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말이 그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자식으로서 부모를 챙길 때가 되었다는 걸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1년을 더 버티다 택시일을 그만두셨고
좋아하시는 낚시도 다니시고
하루종일 티비와 알콩달콩 달콤한 시간들을 보내셨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은 편할리 없었지만
나는 30년 넘게 일만 하시다 이제 쉬시는데
조금 이해해 드려야 하지 않겠냐며 엄마를 달래드리고는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30년동안의 직업전선을 떠나
하시고 싶은 낚시도 실컷하시고
잡아온 생선으로 매운탕도 끓여 드시고
작은 밭에 농사도 지으시면서 7년을 사시다
가셨다.
직업이란 게 자식농사 지으려면
평생 일을 쉴 수가 없지만 힘들어 쉬고 싶다던
아버지의 그 말을
직장인 12년차인 지금의 내게 절실한 말이 되었다.
힘들다.
쉬고 싶다.
란 말을 하셨을 때 부모로서,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무척이나 버거우셨으리란 생각이
어렸을 때와는 또다른 무게와 깊은 의미로 와닿는다.
내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불평 한마디없이 평생 일 하셨듯이 나도 그래야겠지.
이른 아침
어느 택시 기사님에게서 아버지를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