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에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난 안면도 팬션 여행.
의례 가족여행은 엄마, 아빠의 희생을 바닥에 깔고 들어가는 것이기에 나는 마음의 준비라는 표현을 했다.
항상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사촌 도련님네 아이 둘과 우리 아이들 둘, 그리고 애기 아빠와 나, 이렇게 6명이서 떠났다.
자주 여행을 다녔던 사이였던지라 우리는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다.
그런데 출발한지 몇 분 되지 않아 도련님네 막내 녀석의 언어선택이 심상치가 않다.
모든 것이 불만이고 부정적이고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이해를 시키고 타협도 하고 좋은 얘기로 교화해 보려는 모든 시도가 다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솔직히 평소 사촌 도련님이자 친구인 그 남자와 너무 비슷한 생각과 말투에 화가 나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인데 자주 자신의 어머님께 맡겨두고 밤마실을 다니는 도련님에 대해서 화도 나고 녀석아빠의 못 난 부분만 닮아 가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단지 버릇없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만 잠시잠시 짚어주고 그저 수영장에서 웃어주고 맛있는 거 챙겨주고....그런데 저녁에 밥을 하고 있는 내게 막내 녀석이 와서는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약한 진통제를 먹였더니 어느새 살짝 잠이 든 녀석.
나중에 누나에게 듣고 보니 아빠가 늦은 새벽 귀가를 틈타 방학동안 수시로 새벽까지 게임을 했던 것이 이유였고 급기야는 우리 집에 와서 씻고 같이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있을 때 코피까지 터트린다.
아무리 가깝고 허물없지만 나는 이 아이들이 조심스럽다.
늘 지나치게 엄격하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독재자인 아빠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늘 볼 때마다 친구로서 솔직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힐책을 했으나 고집불통 사촌 도령은 정중히 내 조언을 씹어 잡수시는 분이기에 나는 늘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더 안아주고 싶었고 더 품어 주고 싶었다.
원가정.
내게도 멀지 않았던 이름이기에 나는 그 어떤 편견이나 동정심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좋다면 무조건 해 보고 보는 정도의 인정정도?
그 집 막내 녀석은 유독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한 아빠의 성격을 빼다 박아 나는 녀석이 솔직히 못 마땅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영민하고 머리도 좋으며 운동신경 도 남달라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무리하고 녀석들이 씻고 나와 카드놀이를 하는데 이제는 그 집 큰 딸까지 합세해 모든 대화 내용이 짜증에 , 비난에, 폭언에...도저히 봐 줄 수가 없는 상황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자 나는 꾹꾹 눌러 참았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달라졌냐고 서로 대화다운 대화도 못 할 정도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데 여행은 어떻게 갔냐고 화를 냈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은 좀더 부드러운 대화로 게임을 이어갔고 나도 10시가 되어서야 널어놓은 빨래가 가득한 거실에서 함께 텔레비젼을 보았다.
좀더 부드러워진 분위기.
나는 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아이들의 엄마와 매우 가까웠고 아이 아빠와도 격이 없는 사이이며 이 아이들이 태어난 모습을 지켜 보았고 내 아이처럼 같이 씻기고 같이 놀러다니며 지낸 시간이 많은, 이 아이들의 주변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들이 아플 때가 많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들의 아픔도 본다.
우리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도련님네 막내녀석이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는요...다 좋은데 화를 좀 짧게 내셨으면 좋겠어요. "
자기 얘기를 한 번도 이렇게 뜬금없이 던져본 적이 없어 늘 불안했던 녀석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덤덤한 척 했지만 많이 놀랐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좋아요. 할머니가 엄마 너무 힘들게 해도 열심히 사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엄마 좋아요. "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엄마와 이별 후 한번도 엄마 얘기를 스스로 한 적도 없었고 내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었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너 진짜 기억력 하나는 짱이다. 그렇게 어렸는데 그런 일들을 다 기억한단 말이야? 야...큰엄마가 너 꼬추 씻겨준 건 기억 안나냐? ㅋㅋㅋㅋ"
녀석은 매우 부끄러워 한다.
"00아...엄마..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너 생각은 하지? 그러니까 이런 말 하는 거잖아? 진짜 놀랐네? 어른도 그런 생각하기 힘든데...ㅎㅎㅎㅎ 너 말 맞아. 엄마는 엄마의 최선이 거기까지여서 아빠랑 헤어진거야. 큰 엄마가 니네 엄마 잘 알잖아? 니네 엄마 나이도 어린데 진짜 대견하고 참을성도 많고 노력도 많이 했어. 그치?"
녀석은 더 씩씩한 목소리가 되서 말했다.
"네. 저도 알아요. 우리 엄마..제가 위인이 되면 (지네 아빠가 위인이 되라고 했단다..ㅋㅋㅋㅋㅋ) 꼭 엄마한테 고맙다고 말할 거예요. "
그런데 녀석이 김빠진 콜라같은 목소리로 그랬다. 자기가 좀더 컸더라면 아빠랑 엄마가 헤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무슨 말인지 나는 안다.
어린 것들을 혼자서 이래저래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자신들을 키워냈던 자신들의 어린 엄마가 그 어린 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00아...그래. 니가 알듯이 두 아이 키우는 거 다 힘들어. 그런데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건 아이들이 잘 못하거나 아이들 때문에가 아니고 두 사람이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까지 생각 안해도 될 것 같은데? "
"네..알아요. 아빠가 엄마 힘들게 했다는 것도 알고 엄마가 힘들어 했다는 것도요. "
"그래. 그러니까 혹시라도 니들이 힘들게 해서 엄마, 아빠 헤어졌다고는 생각하지마. 알았지? 그리고 너 ...아빠 맘에 안드는 부분 있다고 했지? 큰 엄마네 애들도 큰엄마, 큰아빠 싫어하고 맘에 안 드는 부분 있다..너?ㅎㅎㅎ 큰 아빠 잔소리 심한 거, 큰엄마 가끔 늦게 들어오는 거..뭐 이런거...다 부모라고 완벽하지는 않아. 너 힘든 건 큰 엄마도 알아. 그래서 너네들 오면 더 잘 해주고 싶고 맛있는 것도 더 해주고 싶고 그래. 니네 아빠..별루야. 큰 엄마도 알아. 그런데 있지...니네 아빠 ...남자 혼자서 니네 둘 키우는 거..큰 엄마는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 보통 그렇게 하기 힘들거든. 니네 아빠 멋진 남자다.. 너? "
"네!!! 알아요. 우리 아빠 너무 좋아요. "
안단다..녀석이...
누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부모의 이별 앞에, 가정의 어려움 앞에 아이들이라고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도 가계의 어려움에 가슴이 답답해 10대때부터 신문배달을 했었다.
그런 나였기에 녀석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한 마디 한마디가 아팠다.
뭐라도 될 녀석인 게 분명하다.
어쩜 저렇게 고집스럽고 똑똑하고 현명한지....
어느새 편안히 잠든 녀석의 하얀 얼굴이 예뻐보여 머리를 쓰다듬는다.
완벽한 어른, 완벽한 부모는 없다.
서로 아프고 서로 상처 내고, 상처를 주고 부대끼면서 사는 것이 가족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절대적인 부모에 대한 믿음.
그 순수한 사랑이 참 가엽고 고맙다.
그래서 부모는 더 노력하고 더 애쓰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예쁘고 강하게 자라자...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