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지난번 현영이 예매한 퓨전 국악 공연을 보기위해 명진과 함께 북촌으로 이동했다.
공연은 어스름이 깔리는 8시에 있었고 둘은 남는 시간동안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칼국수와 만두를 시켜 땀을 흠뻑 흘리면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둘은 땀을 식혔다.
커피를 마시면서 둘은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대화에 몰입했다.
그렇다고 중요한 얘기나 논쟁이 아닌, 시덥잖은 일상 생활,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그 소소함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둘은 새삼 확인하고 있었다.
현영이 물었다.
"명진씨는 국악 별로 안 좋아하시죠? "
"아니요. 저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좋아해요. 음악에서만은 관대한 편이예요. 국악 공연은 사실 처음이라 많이 기대가 되네요. 고마워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
"ㅎㅎㅎ아니예요. 사실 좀 조심스러웠어요. 취향이 또 다를 수 있으니까. 좋네요. 거의 혼자 공연을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좋아하는 공연을 본다는 게 참 기분 좋고 더 설레게 하는 부분이 있네요. ㅎㅎㅎ"
"현영씨는 참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향이 강한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음..."
"왜요? 만날수록 이상해요? ㅎㅎㅎㅎㅎ"
명진은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ㅎㅎㅎㅎ아니예요. 그냥 자꾸 뭔가가 더 나올 것 같아서 자꾸만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사람일까....늘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
"ㅎㅎㅎㅎ알면 알수록 궁금하실지도 몰라요. 저도 사실은 수시로 제가 변한다는 걸 느끼니까요. 뭐...사람이 달라봐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 이유에는 어떤 일에든 호기심이 많은 게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너무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구요. ㅎㅎㅎ"
참 대화들이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다.
현영의 사소한 농담에 콘트라베이스처럼 저음으로 웃는 명진의 웃음소리가 참 따뜻하게 들려 현영은 자꾸만 실없는 농담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연시간이 다가와 둘은 천천히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척 습하고 무더운 여름.
소극장 규모의 장소에 사람들이 빈자리 없이 앉았다.
놋그릇의 청아한 음이 울리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비나리...
내방한 관객들에게 잡귀를 털어내주고 좋은 기운과 복을 빌어주는, 공연의 첫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공연 내내 울리는 현영과 명진의 가슴은 북소리로 쿵쾅쿵쾅 고동쳤고 꽹과리, 장구소리로 복잡한 일상의 얽힌 기분은 쨍하게 맑은 가을하늘처럼 청명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구성진 소리를 들으며 둘은 가볍게 좌우로 몸을 흔들며 말랑말랑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물놀이로 그들은 나가자는 말도 없이 둘이 손을 맞잡고 나가 함께 춤을 추었다.
전봇대 같이 키가 큰 명진이 긴 팔을 휘휘 저으며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 현영은 함께 마음이 밝아짐을 느꼈다.
함께 웃고 소리내어 함성을 지르고 비슷한 감동을 느끼는 그 순간이 참 소중하다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명진은 공연이 인상 깊었는지 더욱 수다스러워졌다.
지하철로 향하는 내내 공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고 한달 여 한국에 있을 것이었기에 오늘은 일찍 헤어지기로 했다.
"명진씨!! 잘 들어 가세요. 또 연락해요. 한국에 있으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게 참 많을 것 같으니까 오늘은 푹 쉬세요. ㅎㅎㅎ"
"네...오늘 스케줄 너무 훌륭하고 좋았어요. 다음에 또 부탁드릴께요. 잘가요. 현영씨!!"
오늘은 현영의 전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와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날 오늘 아침부터 목소리가 높다.
큰 아이는 평소 단답형이던 녀석답지 않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농담까지 한다.
현영은 그런 아이들의 변화에 미안하고 안쓰럽고 서운하고..복잡한 심경에서 마음이 산란하였다.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와의 식사.
아이들과 같은 큰 미소, 반짝이는 눈빛 여섯개가 부딪히며 여러가지 소리를 낸다.
큰 아이는 아빠의 앞 접시에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매시 포테이토를 수줍게 놓아준다.
그도 당연하다는 듯 말없이 포크를 가져가 음식을 씹는다.
큰 아이와 눈빛을 교환하지 않고 접시를 보고 있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그가 얼마나 행복한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를 한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과 지금의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그리 달콤하고 아련하게 느끼고 있을 그가 인간적인 동정심이 들었다.
현영은 아이와 전남편, 이 세 사람의 사랑가득한 수다속에 말없이 따뜻한 미소를 듬뿍 담고 있지만
쌉쏘름하고 아릿한 감정 속에 휩싸여 있었다.
되도록 말을 아끼고 있지만 현영은 세 사람의 소중하고 안타까운 순간을 최대한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작은 아이의 먹는 것을 살뜰히 챙겨 주었고 큰 아이의 긴 머리카락과 옷 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완벽히 행복해 보이는 이 시간이 현영에게는 몇 일 내내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급기야 현영은 밥도 삼키기 어렵고 잠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매달 전 남편과의 만남 이후로 수순이 되어 버린 이 증상이 이번에는 그 강도가 현영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왔다.
병원을 찾은 현영은 약을 사들고 집으로 와 대충 집안 일을 마무리하고 물 컵을 옆에 두고 약봉투를 찢어 손 바닥 위에 올려진 약들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한 참을 자신의 방에서 눈이 퉁퉁 붓고 코가 얼얼해질 때까지 울었다.
자신도 이런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어디서부터 그 실마리를 잡아내야 할지 막막했다.
'하아....'
현영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알약을 삼켰다.
현영은 수면유도제를 먹은 몇 일 전부터 계속 아침에 몸이 무거워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정신을 차리려 티테이블로 걸어가는데 톡이 왔다.
항상 바쁜 울여보야...오늘 병원 다녀왔어요?
뜬금없는 전남편의 톡이다.
아마도 여자친구에게 보낼 문자를 잘 못 보낸 모양이다.
어의가 없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친절하게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는 왠지 싫었던 현영은 전남편에게 답장을 썼다.
항상 건강하시라고 잘 전해 주고 앞으로는 보낼 사람 잘 확인해서 보내. 점심 맛있게 드셔.
답장을 보내고 한참을 읽지 않았는지 숫자 1 이 사라지지 않다가 점심이 지나서야 읽었다.
현영은 외근을 나갔다가 식사를 하며 왠지 모르게 화도 나고 기분이 나빠졌지만 굳이 그 톡 내용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해장국을 시켜 천천히 식사를 하다가 속도를 내려고 밥을 말았다.
하지만 반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는 현영이었다.
머리가 묵직하게 느껴졌고 급기야 현영은 오후 네시 쯤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과 기분에 조퇴를 하고 말았다.
현영은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명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진씨...많이 힘드네요. 오늘...저랑 한잔 해 주세요. 꼭...
문자를 보내고 1분도 되지 않아 진동이 울렸다.
명진의 전화였다.
"현영씨!!! 어디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