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창 밖으로 스치는 가을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너는 아빠로, 나는 엄마로 지나온 시간들을
지나는 풍경과 함께 조금씩 덜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칼로 싹뚝 잘라낼 수 없는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에서 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지이다.
늘 나는 너에게 먼저 물어본다.
별 일 없냐고...애들은 요즘 어떠냐고...
너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무심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그냥 희미하게 웃는다.
좋다는 건지...그냥 그렇다는 건지...
너는 항상 그런 사람이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지가 않고 늘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청력에 너의 웅얼거림의 말소리에 가끔 확 짜증이나서 소리를 빽 지를 때도 있지만 그때도 너는 그냥 희미하게 웃는다. 바보...ㅋ
그런 너의 모습을 무척이나 견디지 못했던 너의 여자를 너는 아직도 그리워하는 것 같더라.
아직도...
모르겠어...
글쎄....
이런 말 속에 네가 어떤 마음일지 나는 또 짐작해 버린다. 바보같이 미련스러운 너라는 사람...
참...너도 징글징글 하다...ㅋ
그렇게 아프게 했고, 그렇게 너를 미치게 했던..지금은 네 곁에 있지 않은 그 여자는
과연 너에게 돌아올까 확신은 없지만 어지간한 너의 지고지순한 기다림에 나는 미친놈이라 놀렸다.
부딪히는 술 잔에 너의 시선과 너의 마음을 잠식당했는지 너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꺼 낸 말.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의 손 톱을 네가 잘라주는데 왠지 서글퍼지더라고..
그리고 그 여자가 네 주변에서 사라지고 나서는 좀 더 강한 냄새를 풍기는 섬유유연제를 쓰면서 꼼꼼히 세탁을 한다고..
아이 엄마의 부재를 그렇게 티내고 싶지 않다면서..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사실은 잘 안 가게 된다고.
그 여자 없이 아이들과 가는 모습 자체가 초라해 보여서 싫다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볼지..그 시선이 불편해서 가기 싫다고 했지.
아직도 그 여자의 존재가 너에게는 그렇게 큰 존재인거구나...
참..어지간하다...너...
친구야...
하지만 그 단풍잎 같은 손일 때부터 제법 남자 냄새나는 단단한 손톱을 잘라 주면서 네가 느꼈을 아이들의 성장의 숨소리는 네 것이었잖냐?
그 숨소리를 어느 한 쪽에서는 꼭 들어봐야 하는 건데 아빠인 네가, 엄마인 내가 들은 차이 밖에 더 있겠니?
누군가의 부재와 그 부재로 인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감은 어쩌면 버거움 뒤에 작은 행복으로 기억될 수도 있지 않겠니?
친구야...
혼자서 아이들과의 삶을 산다는 건 참 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남자인 너도 여자인 나도 다 같은 부모로서의 삶이기에 그 부담감과 책임감이란 것은 다 똑같이 무거운 것이 아니겠니?
하지만 기억해 두자.
아이들의 소소하고 작은 기억들이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갈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우리는 혼자다.
하지만 친구야..
완벽할 수 없는 홀로이지만 둘이라고 해서 완벽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자.
혼자이지만 내 것에 최선을 다하고 곁을 지켜주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도, 나도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던 아픈 진실이지 않았니?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너는.
나는 그런 니 모습 싫더라.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무뚝뚝하지만 뭉근한 따뜻한 아빠의 모습 멋지다.
혼자라 좀 쓸쓸해도...
자꾸만 자신이 없어도 너는 참 잘하고 있단 말이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친구야...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있는 너야.
내 말...잘 들어라.
자다가도 떡이 나오지는 않아도 나 빈 말은 안하는 사람이잖냐?
답답하면 또 한잔 하러 가자..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