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호흡

by 바다에 지는 별

2년전 친구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베란다 창 가에 서면 뛰어내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시달린다고 했다.


과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고 하니

"아..내가 그랬었구나.."라고 입꼬리를 올리며 친구는 소리없이 웃는다.



녀석의 그 짧은 답변에 나는 생각한다.


다 지나가는구나,

잘만 지나가면 되는구나..라고.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섰다라는 것은

협곡에서 사방이 암벽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두려움에 숨을 헐떡이다 과호흡이 걸려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는 상황과 비슷할지 모른다.


분명 길은 나 있으나 내 안의 두려움이 너무 커져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


그 때 멀리서 길일 것 같지도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

친구라는 이름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때 그 친구는 자신과의 충동과 현실의 고독감, 자책감으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상태였다.

그래서 한 동안 밤낮으로 톡과 통화를 주고 받았다.


친구녀석은 돈만 벌어다주는 돈줄을 자처했을 때 늘 가족들 사이에서 소외감으로 힘들다 했었다.

그리고 늘 씀씀이에 대해 나에게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아이들과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또 나름의 머리 컸다 스스로를 생각하는 아들녀석들과 매일같이 신경전을 벌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했다.


술이 좀 된 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자신이 옹졸하며 그렇게 불만가득했던 아내가 그립다고..그래서 아직 기다린다고 했다.


기다림도 상대가 돌아오고 싶어져야 의미가 있는 거라며 전화를 끊었다.


찌게 하나 놓고 먹는 밥상이라도 행복이라 느낄 수 있다면...다행이라 느낄 수 있다면 ...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하게 나를톡으로 불러댔다.

내게 김치찌게 어떻게 끓이느냐며 전화가 왔다.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법과 반조리 식품 구입경로 등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소식이 뜸해지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훨씬 말이 많아진 친구.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야구를 시작했고, 이것저것 기웃기웃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친구에게 그랬다.

"너도 살고 싶었지? 그 때 그렇게 얘기할 때도? ㅎ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비겁했다. 애들 다 애엄마한테 맡겨 두고 불만만 얘기하고...미안하더라. 별 거 해 주는 것 없어도 그게 별 것이었는데...

밥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벌써 철들었을텐데...ㅎㅎㅎㅎ"


아이들도 이제는 자신에게 대꾸할 때 (지금도 자기가 말 걸지 않으면 말이 없는 아들녀석들이라고 했다. ) 바라보는 눈 빛에도 편안함이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언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참 좋더란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고맙더란다.


2년 여의 힘든 고비고비를 넘어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많은 고민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홀로 잘 버티고 편안한 눈빛으로 자주 웃는 친구를 보며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부담감보다는 마주보고 있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집 안의 냉기 가득한 기운을 느끼며 들어오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족하지만 서투른 음식의 반찬과 따듯한 밥을 함께 먹고, 거실에서 잠시라도 같이 텔레비젼을 볼 수 있고, 하는 일 없이 거실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주말 밀린 빨래를 하는 일도 모두모두 일상의 단조로움이 아니라

어렸을 때 가족이라는 냄새를 기억하게 하는 잔잔하고 평온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나는 말해 주었다.


함께 있어 주기.

코 앞에 마주 하지 않아도, 곁에 불러 앉혀 끼고 있지 않아도, 무심코 던진 시선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평온한 안정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친구 또한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다.


친구는 주말에도 여느 주부들처럼 아빠로서 주부놀이에 여념이 없이 거실을 가로지르면서도 눈에 걸려오는 아들 녀석들의 펑퍼짐한 궁둥짝 두개를 보면서 무척이나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


행복해 보였다.


할 수 있는만큼 해보기.

포기하지만 말기.

현재가 전부일 거라는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


이 세가지가 2년동안 내가 친구에게, 친구에게 말하며 내게 했던 말들이다.


죽음은 삶의 끝자락에 있지 않다.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으며 내가 막다른 길이라고 판단될 때 살금살금 다가와 내 곁에 앉는다.


하지만 친구라는 이름하나 떠오르면 그 어두움은 슬며시 자취를 감춘다.


내게 주어진 명대로, 너에게 주어진 명대로 살아내 보자. 친구야...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으니 굳이 우리가 불러 들이지는 말자.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아웅다웅할 수 있다는 것. 그 누군가에겐 절실한 행복일 수도 있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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