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마지막 순간에 찌질한 주제-돈, 금전
토요일 오전 작은 아이 축구 클럽을 보내기 위해 안개 낀 것 마냥 뿌연 눈을 반쯤 감고 밥을 차려준 뒤 못다잔 잠을 자려다 포기하고 초과근무를 위해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앉아 바라본 하늘.
잔뜩 흐려져 있다. 포근한 이불을 덮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처럼 왠지 따뜻해 보이는 풍경.
그리고 지금은 싸락눈으로 첫 눈이 오고 있다.
놈인지..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다 첫 눈 때문이다.
첫 눈을 보며 내 머릿 속은 또 잡다한 생각들로 널을 뛰고 있다.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나는 시행착오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실패라는 말은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첫 사랑도, 두 번째 사랑도 끝이 난 시점이 끝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에서야 두 사랑 모두 실패했음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지나간 내 사랑을 기억해 보면 반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첫 사랑에게 받았던 예물 반지는 그와의 관계가 깨져버린 그 날 바로 팔아 치웠으며, 두 번째 사랑에게는 그 흔한 커플링 하나 받지 못 했다.
두 번째 사랑인, 그는 사랑에 인색했던 것인지, 나라는 사람에게 인색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년이라는 긴 만남 후에도 그 흔한 반지 하나 주기를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부담을 수반하지만
그 필요나 심지어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부수적인 것까지 채워주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기꺼움과 고마움, 다행감은 사랑에서든, 우정에서든 그 부담감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이 그에게는 왜 늘 고민스러운 일이었을까 나는 의아했다.
나는 마음이 가고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좀 덜 입고, 덜 먹어도 상대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생각나거나 보이면 서슴없이 산다.
그 선물이 크든, 약소하든 상대에게 건내지기 전까지 내 품안에 있을 때의 설레임과 기쁨은 돈의 값어치를 떠나 나에게도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생일이나 기념할 날이 되면 내 지인들에게 부담가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내가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것 중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 물건들은 대략 포르도 머그컵, 그리고 작은 귀걸이, 손톱깍이, 립스틱, 머리핀, 핸드로션, 볼펜 등 매우 사소하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들로 그것들을 사용할 때마다 그들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물며 나만의 기념일이 아닌, 두 사람에게 의미 있고 기념할 만한 날의 선물은 좀더 욕심을 내게 되는 게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가능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이런 당연한 바램이 거부 당하고 나는 그 흔한 반지 하나 지니지 못하고 이별한 사실이 목구멍에서 걸려 삼켜지지 않고 늘 이물감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좀 웃기지만 반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신파극에 나오는
"놓아라!!!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갑부의 아들 김중배가 심순애에게 물질공세로 그녀의 마음을 얻었고 이수일에게서 멀어지는 순애의 마음을 원망하며 이수일 자신의 가난한 고학생의 처지가 비참했을 것이다.
그 끝은 자신도 끝내는 고리대금업자의 서기관이 되어 뜻하지 않은 유산을 물려 받게 되고 자신이 그렇게 비웃던 재력을 쌓은 뒤 다시 심순애와의 사랑을 이룬다는 것이 이 신파극의 결말이다.
이 신파극만 봐도 사람은 사랑만 먹고 살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물질도 함께 동반되어야 그 사랑은 오래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도 물론 바람직하지 않지만 물질로 인해 감정이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필요를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상대가 그만큼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그 사람의 능력을 믿기에 가능한 얘기이다.
그렇다고 서로의 능력 이상을 바라는 말이나 행동은 둘의 관계를 싸늘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파극이 되었든 현대의 드라마가 되었든 결국은 인색함이다.
누구에게든 성장과정이나 과거 지나왔던 연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가 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같은 문제로 헤어짐을 반복하고, 같은 문제로 싸우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 틀림없다.
마음이 가고 내 사람이라는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상대가 잘 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어도 결코 자신의 높은 이상수치를 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기에 그 충족조건은 터무니 없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감정보다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말하기 꺼려지고 피하고 싶은 주제이기에 내게는 이 두 번째의 사랑 후 마음의 상처가 컸지만 최대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정리 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시간의 반이 이별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는 지금.
이제는 목구멍에 걸려 있는 그 이물감의 정체를 드러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에서야 정리를 하려는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그가 생각날 테니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이해이든, 오해이든 나는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없기에 그냥 내 나름의 생각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어쩌면 그보다 내가 더 자신에 대해서 더 정리를 잘 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줄 수 있는데 안 주는 것과 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못 주는 것은 다르다.
씁쓸하지만 나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흩어진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져 완성되듯 그가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이해가 된다.
이기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 내 능력 이상의 것들을 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목말라 했다.
나는 비겁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의 비난이나 원망은 그의 몫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늘 그의 카톡 대문글은 나를 향한 원망으로 가득하고 이별의 아픔으로 어두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이별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각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나에 대한 미안함, 자신에 대한 후회 등은 한 조각도 볼 수가 없다.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이별의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그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고 싶었고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와는 다른 이유로 나는 우리의 이별에 후회나 원망, 미움은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그에게 넘치도록 주었고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가장 슬프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금전적인 문제에서의 마지막인 순간이다.
하지만 많은 연인들, 많은 부부들의 마지막은 꼭 이런 문제들이 그들 입으로 나온다는 것이 문제인 것으로 보아 사랑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나올 수 있고 가끔은 그들의 이별의 이유가 될 수 있는 문제이지 싶다.
그러다보니 사랑한 후 이별할 때의 기대치는 한없이 낮아진다.
잘 해도 후회가 되고 못해도 후회가 되는 것이 사랑이었다고 마음 정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진솔하고 아낌없는 사랑을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려도 괜찮지 않을까?
부디 다음 사랑에게는 한없는 너의 마음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