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의 앞 길을 위해 기도해주는 일은 내게 참 익숙한 일이었던 때가 있었다.
신과 멀어진 후 나는 더이상 기도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나 희망적인 말들로 위로하고 이끌어 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요즘들어 내 한계를 자주 느끼곤 한다.
사람은 그 어떤 말로도 바뀌기 어렵고
내 진심어리고 진지한 조언들이 얼마가지 않아
그 효력을 상실해가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진심어린 조언의 말이란 존재가 참으로 허무하고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이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할 때 더 열과 성의를 다해 내 진심을 다해 호소하기보다 그저 간절함을 담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내 곁에서 오래오래 품어 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교만할 때는 기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 스스로에 대한,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찾아올 때 정해진 종교의 신을 찾거나 불특정한 이름의, 막연한 의미의 신이란 존재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스스로의 인생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길을 보여주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서로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되도록 말을 아끼고 지인들을 향한 바람이 담긴 기도의 작을 돌을 쌓아 올려보는 것도 현명하리라.
잘 될거야.
내가 응원할께.
네 생각나면 기도해 줄께.
라는 말이 예전에는 참 추상적이고 아무런 힘도 없는 말처럼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왠지 그 말 속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요즘 새삼 깨닫게 된다.
목소리를 낮추고,
힘을 빼고 한 발 물러서서 살랑거리는 바람같은 목소리로 지인들을 위로하고 안아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