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후기
한 달여만의 월차를 쓰고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느긋하게 누워 '향기'라는 검색어로 사진을 검색한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 사진을 검색하는 것이 나의 또 다른 힐링방법이다.
그러다보니 걸려 오는 사진들이 다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의 포스터들이다.
나는 티비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을 반복적으로 보았던 드라마였던 만큼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아련한 느낌들이 묻어 있다.
1화부터 16화까지 다시보기를 시작했고 정오부터 보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달렸다.ㅋㅋㅋ
이동욱과 김선아의 연기는 지금과는 사뭇 많은 차이가 있다.
김선아는 저 때도 참 연기가 자연스럽고 따뜻함과 푸근함이 있고 이동욱은 왠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신인냄새가 있지만 조각 몸매와 외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쓰읍~~!!!!)
등장하는 인물은 대충 이렇다.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참고, 양보하고, 절제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노처녀로 살다가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연재역의 김선아.
어린 시절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모든 것에 대해 열정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어 살던 중소기업 여행사 회장 아들인, 강지욱 역의 이동욱.
그리고 재벌 2세들끼리의 계약결혼 상대인, 임세경 역의 서효림.
배역 설명에서부터 구도가 그려지고 스토리가 나온다.
그런 뻔한 구도 중 하나인 '시한부'라는 주제는 매우 진부하기는 하나 그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의외로 매우 덤덤한 면들이 평소 내가 글을 쓰는 분위기와 매우 닮아 있어서 신선했다.
연재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을 막 대하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며 억울하다고 악다구니를 쓰다 급기야 상사의 얼굴에 사표 싸다구를 날리고 일본 오키나와로 떠난다.
그녀는 자신의 회사 회장의 아들인 본부장과 우연한 오해로 엮여서 좋은 추억들을 짧은 기간 안에 야무지게 챙긴다.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애틋한 사랑 한 번 찾아오지 않은 이유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타적이고 뭐든 자신을 양보하던 모습에서
앞 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멋진 연애를 꿈꾸기 시작한다.
이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조금씩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연재.
참고 양보하기만 하면서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인색하게 굴었던 과거의 자신에서 스스로를 먼저 챙기기로 마음 먹고 써내려가는 버킷 리스트.
스무 가지의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적고 하나 하나 실천해 가는 중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닥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씩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과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뜨겁고 서러운 눈물로 오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티는 동안 여행지에서의 짧은 시간으로 인연의 끈이 닿아버린 지욱은 버거운 순간마다 소리없이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두 사람의 이끌림은 이미 여행지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연재의 탱고 강습을 지욱이 의도적으로 함께 받으면서 둘은 가벼운 스킨쉽으로 시작해 짙은 감정의 깊이로 빠져들게 된다.
춤으로 더욱 달구어질대로 뜨거워진 둘의 감정은 지욱의 결혼상대의 존재로 인해 제동이 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끊어내고자 노력하는 의지와 강하게 끌리는 감정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연재의 시한부 인생에 대해 알게 되는 지욱.
그러나 죽음이나 결혼의 명확한 이별의 이유에도 이미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고 있는 감정에 무기력해짐을 깨달은 그들은 그냥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만큼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서 허락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끝이 보이는 사랑.
시간이 정해진 사랑은 애틋할 수 밖에 없고 소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정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고 사는 건 아닐런지...
그 잊음으로 인해 백년가약, 백년해로의 통통한 꿈을 꾸면서 최대한 이 사람과 오래 가려면 어떤 면이 맞아야 하고, 어떤 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어떤 면들을 서로 맞춰가야 하는지 계산하기에 바쁘고 너무 큰 오차 범위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인연을 끊어내기에 바쁘다.
그 흔한 백세를 누릴 것이라는 장담과
그 오랜시간이 당연히 내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인연의 고리를 걸어보기도 전에 관심의 눈길을 거두고 시간을 흘려 보낸다.
중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정 운명을 믿고 싶은 간절함은 있지만 내게 딱 맞춰지고 완벽하게 서로를 공감하고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많은 행운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이미 각자 살아온 시간만큼 깊고 잦은 흉터들로 잔뜩 겁도 집어 먹었고 사랑이라는 것에 자신을 걸기에는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도 저돌적인 사랑으로 달려나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이 외에도 수많은 이유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감이 오랜 친구처럼 자신의 주변에 지겹도록 들러 붙어 있어 사랑에 대한 간절함과 목마름은 가득하지만 장애물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뛰어 넘을만큼 쉽지 않은 이유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유가 될 수도, 변명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은 조급하지만 자신감이
그만큼 바닥을 치기 쉬운 시간이 중년이란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한부라는 것에 좀더 집중을 해 본다면
우리는 좀 더 적극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백세의 운명이 내 손아귀에 쥐어질지 아니면 반대로 언제 끊어질지 모를 불투명한 명줄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너무 진중하고, 진지함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내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 오면 순발력과 무모한 직감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상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둘의 재회는 자꾸만 늦춰진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 쪽이 밀어내면 다른 한쪽은 한발씩 다가서는 그들의 모습은 참 애틋하고 따뜻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평소 늘 이해하고, 품어주고, 포용하는 입장에 자주 서게 되는 나의 이면에는 나보다 상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내게 한 걸음만 빨리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뒤로 물러나는 만큼 다가서는 서로가 있었기에 더 이상 멀어지지 않는 그들의 거리가 많이 부러웠다고나 할까?
멀어지는 사랑을 잡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저 보내줘야 하기에 애써 참고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할 뿐이지..
그 치열하고 격렬한 싸움은 사랑하는 이의 포옹 한 번, 보고싶다는 고백 한 번에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릴텐데 그 누구도 높지만 불안정하기 그지 없는 높은 부정의 벽을 무너뜨린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그들의 거침없는 다가섬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탱고.
그들이 급속히 가까워지게 된 이유에는 물론 잦은 스킨쉽도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탱고라는 춤이 있었다.
강렬하고 가슴 뛰게 하는 탱고 리듬과 젊고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그들에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탱고 음악은 그들을 격하게 원하게 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살사를 쉰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그저 3분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의 춤 파트너이지만 언제 들어도 가슴 뛰게 하고 설래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음악과 춤이란 최음제 같은 마력이 있다.
그래서 상대를 강하게 끌어당기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살사를 알기 전과 후는 인생이나, 인생을 보는 눈이 참 많이 달라졌다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는 게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다.
비록 3분에서 5분의 짧은 음악이 흐르는 동안의 인연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그 마법같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모든 정신은 현실로 돌아온다.
춤이란 것은 그런 것 같다.
음악에 내 몸이 흔들리고, 상대를 느끼지만 결코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찰나의 감정과 느낌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이 강렬하고 짙은 것이다.
아무런 감정 없이 춤만 추는 댄스파트너라도 그런 강렬한 감정에 젖게 되는 것이 춤인데 감정이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진 그들에게 탱고는 아마 참을 수 없이 숨막히는 섹스 이상의 흥분과 열정을 느끼기에 충문한 매개가 되었을 것이 뻔하다.
춤이란 것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춤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모르는 상대와 추는 것이 건강하게 운동하는 느낌으로 오래도록 추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춤이란 것으로 절제하고 눌러가면서 그 열정을 다스리는 것이 어쩌면 춤이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사랑.
이별.
재회.
죽음.
정해진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이름들이지만
춤과 음악은 인생을 더욱 부드럽게 하고 여유를 주기도 하며 가끔은 심장을 뜨겁게 데워주는 역할도 한다.
그 안에서의 사랑과 만남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주제인,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더욱 밝고 따듯하게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그들의 야무진 모습들이 참 예쁘고 아릿하게 아프다.
무언가 급하고 격정적인 노력이나 애씀이 아닌, 그저 그 시간에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해줄 수 있는 만큼 챙겨주고 마음 써주는 것.
그런 모습들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은 별 게 아니란 생각을 했다.
걱정하는 마음.
그것이 상대를, 자신의 주변인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언제가는 소멸할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참 아름답고 절절한 마음에서 당부의 말.
너무 오래 힘들어 하지 말고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이런 말을 하면서 남겨진 사랑을 두고 소멸하는 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드라마를 보면서 내 스스로에게 당부해 본다.
사랑이란 것은 끝내 소멸하는 것이고, 소멸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을 지나는 동안 점등하는 황색신호등처럼 깜박일 때도 있겠지만 멀리 보지 않기.
소멸할 것을 두려워 하고, 마지막을 바라보다 자신 없어 돌아서지 말기.
무모해야 하는 것이 사랑이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려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
지구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둘만 사는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