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실/자체발광

by 바다에 지는 별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공격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위로의 말도, 격려의 말도, 응원의 말도 아픔으로 다가와 목구멍까지 차 올라 있는 수위를 넘기고

눈물을 보이고 마는 상황들...


눈물의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도 닫고, 귀도 닫아야 한다.

오롯이 혼자 만의 시간.


깊은 수면으로 가라앉는다.

내 안 깊숙한 곳으로 내려간다.

그 어떤 빛도, 소리도 차단된 어두운 곳.


수면 위로 떠오르려 무던히 애써도 그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그럴 때는 그저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을 만큼 한없이 가라앉아 본다.

바닥까지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 바닥을 치고 올라가고 싶어지겠지.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바닥으로 내려가 보기.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나를 돌아본다.

참 현란하고, 번지르르하고, 딱 부러지는 많은 말들을 쏟아냈던 자신을 깨닫는다.

그렇게 쏟아내었던 말들이 그 누군가에게는 창과 칼로 박혔을테고,

상대에게는 되지도 않는 가벼운 위로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도 나란 존재는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겠지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

말이 주는 힘은 그 조절력에 따라서 파괴력으로 바뀌기도 하고 힘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말을 줄여야 한다.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너무 상대를 배려하는 것 또한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해 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누군가의 말을 들어줘야 할 때는 더욱 말을 줄여야 한다.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문제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 누구의 부정적이고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 들어줄 여유가 내게는 없다.


암막을 친, 한 줄기 빛조차 들이지 않는 나만의 방 안에서 홀로 지낸 시간이 오래되어 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반복되는 내 일상의 아픔과 무기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은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기도 하는 그 음습한 방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만큼 나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구마구 퍼내는 에너자이저 같은 사람으로 사람들은 나란 사람을 기억하니까.


사람들이 나란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내 모습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고집스럽게 바뀌지 않는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결국 사람은 혼자라는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은 습관과도 같은 어두운 모습이다.


그래서 내가 어찌해 볼 수 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반복되어 무기력해질 때마다 입을 더욱 굳게 다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나누어 보아도 해결되지도, 가감되지도 않는 그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목구멍에 딱 걸려 있는 상황이 오래될수록 나는 더욱 말이 없어진다.


그런 어두움의 시간이 오래되고 버거워질수록 많은 사람들 속의 나는 더욱 밝고 요란한 웃음으로라도 그 어두움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싶고 무게감이 덜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고 곰팡내 가득한 내 어두운 방을 밝은 빛과 신선한 공기로 환기시켜 주고 싶은 바람.

그래서 폐부 깊숙한 곳까지 깊이 새로운 공기로 호흡하고 싶어 지는 자연스러운 생존의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무언가 거창해 보이는 것 같지만 누구나 혼자만의 암실이 있을 것이다.

그 암실에서의 죽음의 그림자 또한 그 일부인 암실.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한 방.


부정하지는 말자.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꿈꾸고 살고 싶어 지는 것이 사람이니까.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냈고 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려 더욱 그 어두운 기운들을 몰아내려 애써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


삶의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죽음의 이유도 그만큼 충분히 있었던 사람이지만 나란 사람은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아왔고, 살아내고 있다.



스스로 걸어들어간 암실. 그래도 살아야할 이유를 생각해 낸다..그러면 나는 늘 그래왔듯이 빛의 세상으로 걸어나오고 싶어졌지.









나란 사람을 돌아보다.

너는 참 독특한 사람이야.
너는 어디에서나 튀어.
눈에 항상 띄는 사람이야.
그런 너를 아무리 숨기려 해도 너는 금방 들켜버리지.

그렇게 튀게 보이는 삶이 피곤하지 않아?
평범하면 좀 편할 텐데...


너는 물론 내가 말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게 너야.





사는 게 친구의 말처럼 불편하기도 하지만 나름 즐기는 면도 없지 않아 많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타고 나는 성품이 있다.

그 성품대로 살다 보면 꼭 나처럼 튀든 그렇지 않든 어려움은 누구나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끼리 부대끼며 사는 일은 정도만 다를 뿐 서로 충돌하고, 서로 상처 내고, 상처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딱히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나만 특별히 더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주변인들도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던진 말일 것이다.


또한 나의 그런 면이 주변인에게 불편함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그들에게 내가 맞춰가기도 하고, 그들에게 나란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하면서 그들과 나의 중간 지점을 찾아내면서 세상에 나를 적응시키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 오면서 얻은 결론은 결국은 내 사람들은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함께 반짝일 수 있다면 서로의 빛에 물들어도 가며 어우려져 살아가겠지만 자극적이고 요란스럽게 느껴지는 사람까지 구지 내 곁으로 끌어당겨 앉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자 어울릴만한 빛을 찾아가면 그 뿐이다.


그리고 나에 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튄다는 말보다 반짝인다는 표현을 가끔 쓰기도 했고 나는 이 표현을 더 좋아한다.





반짝거리다.

참 긍정적이고 근사한 말이다.


사람은 각자의 빛깔이 있고 색이 있지만 나이 들수록 사람들은 자신만의 반짝임을 자꾸만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중에도 자신의 색깔이 옅어지기보다 나이 들수록 더욱 빛깔이 진해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면 나는 호기심이 든다.

물론 나와 비슷한 코드를 가진 사람이면 더욱 그 빛깔을 빨리 알아차리고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진다.


빛깔....

늘 누군가에게 맞춰야 하고, 자신의 의향이나 취향에 대해서는 늘 괜찮다고, 나는 다 좋다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회인으로서, 가족과 주변인들 사이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과 그들에게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늘 자신의 빛과 색을 뒤로 밀쳐내며 살았던 20년 이상의 시간들에서 이제는 조금 나 자신의 색을 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독특하면 어떻고 튀면 좀 어떤가?

내 사람들과 주변을 잘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내심과 책임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으니 오랜 시간 동안 오롯이 나란 사람으로 살지 못했던 시간만큼 독특하게 빛나 보자.


우리는 그래도 된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각자의 빛으로 함께 반짝거려 봅시다.(출처;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 근성)

https://youtu.be/30xeoE7xb3c

미러볼처럼 반짝였지. 영원히 빛날 것만 같았는데...컬러풀했던 표정들과 웃는 모습은 어느새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얼굴을 하고서 어딜 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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