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째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
답답하고 무겁게 내려 앉아 있는 마음은 그저 귓가에 울리는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무언가가 속에서 저릿하고 비릿한 슬픔같은 것이 자꾸만 코 끝으로 올라온다.
왜 이럴까?
하긴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출근 길에 불어댔던 찬 바람.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겨울이 벌써 지루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도 아니면 출근하자마자 금요일 휴가 낸 사이에 바뀐 지침을 숙지하라던 직장동료의 잔소리에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
하루 종일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화장실 두 번 간 것이 내 유일한 사치스러운 휴식이었던 숨가뿐 하루탓일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음악을 듣다가 올라 오는 한마디가 울컥하고 코 끝을 빨갛게 물들인다.
'애닳은 그리움을 잊었구나.
다치기 싫어 누군가를 가슴 깊숙이 품기를 두려워 했었고, 짙은 그리움으로 갈망하기를 피했구나.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은 애닳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는 일이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애닳는 그리움이 가득한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스스로를 지켜야만 하는 나이.
참 김빠지고 기운 빠지는 사랑이다.
하지만 현명하게 서로를 지키고, 자신의 사람도 다치지 않는 사랑이다.
내 나이다운 사랑인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너무 가깝지 않고, 너무 많이 알지 않기로 하는 것.
젊은 혈기였을 때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사랑방식이지만 지금의 나는 잘은 하지 못하지만 노력하고 지향하고 있다.
최대한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걸지 않고, 넘치게 주지 않는 사랑.
그리고 멀어지더라도 여전히 내 것들을 잘 지켜내며 태연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사랑.
목숨걸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도 결국은 사랑이란 주제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되지 못할 것이란 걸 알게 된 지금은 슬픈 진실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순수함과 불순함의 차이가 아니라 인생에서의 사랑이란 부분은 전체가 아니라 일부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내 인생은 소멸하지 않지만 사랑이란 건 내 인생의 시간에서 일부분이기에 내 삶 전부의 시간에서의 비중은 크지만 전부를 엎어지게 하거나 흔들리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겠지.
슬프지만 인정하기로 한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은 후에 사랑이란 존재감이 좀더 줄어들어 내 삶이, 내 생존이 더 절실해질 때 즈음하여 홀로 됨이 온당한 삶의 방식임을 인정하게 될 시간이 온다면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슬픔이 묻어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인정하는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고 조금은 무덤덤하게 무뎌진 감정으로 사랑을 놓아버릴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움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사랑에 목매지 않음이 서글프지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