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女子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잎의 맑음,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열 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지냈다.
직장인으로 5일을 살다가 이틀동안 엄마로 돌아가는 주말이란 시간이 참 바쁘다.
봄이 오고 있다.
미뤄두었던 여러 일을 분주히 하다가 손톱 밑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났다.
너무 바쁘고 힘든데 다 큰 딸은 철부지처럼 누워서 자신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엄마의 분주함으로 부담이 되나 심통난 마음은 어쨌든 고집스럽게 침대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책장이나 서랍은 중학생에 머물러 있다.
신뢰없는 약속만 하다가 끝내 내가 뒤집어 엎고 말았던 것이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쉬 몸을 일으키지 않는 저 고집스러움은 내 어린 사춘기 때의 나를 꼭 닮았다.
자꾸 부담을 주면 더 고집스럽게 심통을 부리고 요지부동인 모습.
허탈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랴.
나 또한 그런 못된 딸이었는데....
여유라고는 1분도 없었던 오늘 하루 헛헛한 마음으로 맥주캔을 딴다.
최근에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 이후 ' 를 펼쳐들고
한 모금의 알콜과 한 줄의 시를 음미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사람이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을 희생할 자세가 되었을 때 조심스럽게 건네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은 촛불처럼 빛난다.
역시나 책은 오늘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희생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란다.
역시 어려운 것이 사랑인가 보다.
아직은 혈기가 왕성한 것인지 여전히 희생이라는 단어는 왠지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사랑은 기쁨의 순간보다
고통의 나날이 더 많은 것을
하지만 짧은 환희가
머나먼 날들의 힘겨움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서정윤의 묘비명에서 발췌-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싯구다.
원래 사랑은 고통의 나날이 기쁨의 날보다 더 많은 것이라고 한다.
그 짧은 환희가 머나먼 날들의 힘겨움을 버티게 한다고 한다.
그래...
원래 사랑은 그랬던 거였다.
고통과 슬픔이 더 많은 것.
누군가를 무작정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참 힘들다.
모든 고통과 버거움이 모두 내 몫이니까.
그리고 그 힘겨움을 알아주면 고맙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기꺼운 책임으로 계속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서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는 오롯이 자신의 소유인 외로움과도 벗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욱 외로워지는 것이므로...
사랑은 해도해도 어려운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