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거나 살아남거나

남쪽으로 튀어 후기

by 바다에 지는 별

자식 키우며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고, 그 일상이 자주 거대한 파도처럼 두려움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이러한 동질감으로 우리는 자주 톡을 주고 받았다.


유독 생계에 대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심해질 때면 나는 그녀를 찾는다.

몇 일전이 그랬다.

빤한 월급쟁이로 자식 키우며 사는 것으로 내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인생이므로 우리는 과연 진정 홀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 톡이 위에 나와 있는 글이다.


우스갯소리를 섞은 대화였으나 우리는 늘 이 주제에 대해서 진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긴 연휴에 나는 무료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이 영화.




줄거리는 네이버에서 펌함.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최해갑(김윤석 분)은 시청료 때문에 전기요금을 내지 않고, 자기가 동의하지 않은 국민연금 납부를 거부하며 자기 소신대로 살아간다.


자신의 집에 잠시 신세를 지던 고향 후배 만덕(김성균 분)이 자기 고향인 들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같은 섬 출신 국회의원 김하수(이도경 분)에게 자살 폭탄 테러를 하려다 붙잡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도움을 준 둘째 나라(백승환 분)가 체포되고, 해갑은 둘째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형사(김종구 분)에게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겠다고 각서를 쓴다.


때마침 집으로 압류 통지서가 날아오고, 해갑은 식구들과 함께 차압 딱지가 붙지 않은 살림을 챙겨 자신의 고향 들섬으로 떠나게 된다.







김윤석 분의 최해갑의 별명은

체 게바라이다.

그의 별명은 4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인의 닉네임이기도 했다.

겹쳐지는 이미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련이 없어보이는 캐릭터이다.


나보다 한 살 위였던 그 사람은 참 여린 사람이었다.

전라도에 살던 그를 나는 두번 봤었다.

그 적은 만남으로 나는 그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하고 표류하는 그의 마음은 이미 어떤 이야기도 삶에 대한 애착을 끌어내지 못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몇 달 뒤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나는 애도하지 않았다.

그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두 구차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병명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이승에 남을 하등의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의 결정은 수순이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가 그랬다.

삶은 견뎌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도 견뎌내야 할 이유들을 다양한 곳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고 믿기에...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최해갑이 살아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연연하지 않았던 삶의 여러가지 의무와 책임들이 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명확한 답은 알 수 없으나 그는 그저 주변인들과 자신의 가족을 지켜내며 견뎌내는 의미의 연명이 아닌,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 그 자체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지키고 싶어했던 것은 대의나 정의가 아니라 그저 소시민으로서 자신의 생계와 평화로운 일상이 다였을 것이다.


그저 함께 잠을 자고, 한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함께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꿈이었을 것이다.


그 소박하다고 생각하는 꿈이 사실은 지금 도시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무척이나 부럽고 동경하는 마음에 영화를 보고 귀농밴드를 기웃거려 보기 하고, 어느 영어강사의 귀농글을 매우 집중해서 읽어내려 간다.


영화와는 달리, 구체적인 그들의 맨땅에 헤딩하기의 사실적인 현실을 본다.

역시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꿈을 꾸고, 앞을 바라볼 무언가가 있음에 가슴 가득 뿌듯한 기분이 든다.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신석기 시대이든, 현재 지금이든 먹고 사는 일은 매우 구차하지만 삶이 지속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하지만 그 구차함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과 가장 가까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살아내는 것은 분명 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말을 하는 것일지 모르나 사람은 무조건 자연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적합하고, 자연스러운 마지막을 맞이하기에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겁고, 지긋지긋하지만 아직은 놓아서는 않되는 삶이기에 꿈을 꾸고 싶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그 곳에서의 삶을 꿈꾸다 보면 시간은 좀 더 빨리 흘러가지 않을까?


좀 더 나은 삶은 실현불가능한 억만장자도 아니고, 해탈의 경지를 가진 유명인도 아닌, 그저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하게 내가 노력한 것을 감사히 여기고, 하루하루 자연과 가까워지는 일이 두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서둘러 먼저 간 그가 도착한 그곳에서 그는 잘 있을까?


아직은 나의 부재에 마음아파할 사람들이 있기에 그가 구차하다 얘기했던 삶들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나는 최대한 목 넘김이 시원할 만한 삶으로 마감하고 싶은 기대감은 있다.


언젠가는 갈 그 곳이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작가의 이전글Is this your best?(당신의 최선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