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엄마가 서류작성할 동안
아이와 그림그리기를 하며 놀아주었다.
고양이도 그려주고, 스티커도 주었다.
엄마가 볼 일을 다 끝내고나자 어린이는 못내 아쉬워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사탕도 주고 농담으로 달래주기도 했지만 갈 때 즈음, 가지고 놀던 색연필을 왜 주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 ㅠ.ㅠ
끝내 그 어린이는 "너무해"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젊은 어머님의 손에 끌려가다시피하며 퇴장했다.
사라지신 어린이를 생각하며 떠오른 글 귀.
장담하건데,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로저 로젠블라트,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중 발췌-
최선으로 대해도 정작 본인의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으면 원망을 하는 것은 어린 남성에게나,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공통되는 부분이지 않을까?
사랑하면 다 아이같은 마음이 자주 드니까 말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상대편에 따라서 진심이 받아들여지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하긴 왜곡이란 단어도 어폐가 있긴 하지만..)
진정 이타적인 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은 '나' 스스로 해석하고 정리하며 결정내리는 건 '나' 자신이니까.
하나의 사랑이 가고, 또 하나의 사랑이 왔다.
많이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이었지만 사랑이라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다가온 사랑이 지나온 사랑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이 오버랩될 때는 많이 아프다.
말할 수 없이...
첫번째 사랑이 그랬다.
최대한 기다리고, 배려하고, 노력했으나 그는 내게
미안하지만 자기는 나의 사랑에 너무 모자라서 죄책감으로 많이 무거웠다고..미안하다고...
그런데 다가온 사랑도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죄책감도 든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많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담이 아닌 고마움으로 깊어지는 감정을 공유한다면 좋겠지만
부담감의 무게로 자꾸만 각자의 감정의 깊이가 생기고 그 깊이는 둘을 멀어지게하는 거대한 강으로 바뀔 즈음에는 이미 그 관계는 끝이 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려를 부담으로 느끼거나 고마움의 감동으로 느끼는 건 매우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저 주관적인 해석으로는 받는 사람의 마음크기와 주는 사람의 마음크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이 상대보다 저만치 더 멀리, 깊이 가 있는 사람의 감정이 상대편에 사과해야 할 일도 아니며,
상대의 마음만큼 따라가지 못 하고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맞지 않는 것일 뿐.
어떤 방법으로든 그 간극의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거리는 좁혀지기 어려웠다. 나의 경험상으로는.
누군가를 선택하고 아파하면서도 사랑하는 일은
내 노력과 최선의 여하에 따라 감정의 간극이 줄어들거라는 기대나 희망을 버려야 한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지금 감정조차 확신하지 못하는데 앞으로의 먼 미래의 감정을 어찌 알겠는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다가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되 자꾸만 자신의 감정이 왜곡되고, 상대에게 부담이 되어 간다면 답은 정해지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 이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모든 기대나 꿈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어른이지 않은가?
각자의 최선을 다했으나 이별할 수 있고, 사랑이 식을 수 있으며, 진심이 무거운 숨막힘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그래서 고통받고 버거워하며 이어간 사랑이었기에 내 아픔은, 내 이별은 상대를 원망하는 일보다 그저 서로의 소중한 기억은 남겨두되 슬픔의 시간들은 원망보다는 서로 다름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며 이별의 시간을 인정함 옳다.
그래서 나는 이별조차 사랑을 갈무리 하는 시간이라 여긴다.
이별로 인해 내가 최선을 다한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