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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Aug 27. 2018

내가 아픈 건 그대 때문이 아니다.

만성과 급성의 시간을 반복하는 것이 사랑, 삶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있을까? 과거라는 시간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고,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는 더 아플 수도 있고,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간은 아프다.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 새벽비는 만성 류머티즘이 일기예보를 하듯 어제부터 내 마음의 여기저기가 저릿저릿 쑤시고 아팠다.

그렇게 저기압의 공기를 머금고 내리는 이 비는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하다.


과거에 나는 내가 많이 아픈 사람인지 알지 못 했다.  현재 지금의 내가 스스로에게 말을 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인가?

아니다.  어쨌다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의 상처가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고, 발을 걸어 넘어 뜨렸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이 많고, 큰 사람이다.  그래서 늘 내가 앞서 나갔고, 애태우는 일이 많았다.  그런 내가 싫을 때가 너무 많았다.  왜 나란 사람은 이렇게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져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쩔쩔 매는 것일까?


열렬히 사랑해서 내 사람이 되었던 그와 함께 했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그는 분명 내 사람이었지만 늘 내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 곳이 어딘지, 그의 먼 눈동자와 차가운 심장이 어디를 떠돌고 있는 것이지 늘 곁으로 불러들이고 있었지만 그는 듣지 못 했다.


많이 아껴주었고, 많이 사랑해 주었지만 그는 자꾸만 멀어지기만 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고, 나는 내가 살아야 했기에 그를 내려 놓았다.  그는 그 때서야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했고,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 주었다.  


이제는 묻지 않는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느꼈던 잠깐동안의 사랑이란 감정은 늘 숨막히는 현실과 내가 동일시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일상과 함께 너무도 빨리 시들어 버렸다.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도 지루했고, 어려운 시련의 시간에는 더욱 혼자이고 싶어했다.


그래도 내 잘 못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내 잘 못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랑이 다가와도 나는 아프다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이 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자신의 지병으로 남게 된다.

환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알러지 질환처럼 자극의 인자가 나타나는 시기나 사람에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의 통증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 통증과 증상의 정도만 달라질 뿐 완전한 치유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병은 밀어내고, 완치하기 위해 미워하기 보다 보듬고 가야 한다.


자신만의 과거 역사에서 발생한 자신의 지병이 된 병에 명약이 되는 사랑이나, 상황은 없다. 완치를 위한 명약의 사랑을 찾아 헤매이기 보다 자신을 다독이고, 내게 머무는 사랑에게 자신의 지병을 알리고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어도 완치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미 자신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그 지병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릴 수 없듯이 말이다.



급성기와 만성기를 반복하며 그저 사랑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성난 상처를 잘 다독이지 않으면 또다른 장애와 후유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기에 또다른 지병을 보태지 않으려면 최대한 내 스스로의 상처에 자극이 되지 않는 상황과 사랑에 대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리라.

그리고  과거의 내 아픔이 다시 되살아 나더라도 절대로 상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상처는 나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상황과 사랑에게 내 소유의 상처에 대해서 낫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 못 된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지병을 알리는 것일 뿐이다.

그 환부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라면 상대는 뒤로 물러 설 것이고, 어떤이는 그 상처를 덮어주거나, 싸매주기도 할 것이다.


뒤 돌아서 가는 이에게 드는 서운함과 슬픔의 책임은 물론 내가 아니다.  아픈 것이 잘 못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혼자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 익숙한 방법으로 자신을 다독이거나, 싸매주는 손길을 받아들일지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해석해서도 안되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이기적인 사랑이다.

늘 되돌아 보야야 한다.  내가 너무 큰 기대로 자신의 상처를 상대에게 책임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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