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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Feb 29. 2020

양지는 반드시 음지를 압축하고 있는 법

소설 '허삼관 매혈기' 리뷰

이 소설은 처음에 영화로 보았다. 어찌나 엉엉 대고 울었던지...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목 놓아 울어본 것이 참 오랜만이라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나서는 갑자기 머쓱해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매혈'이라는 주제가 너무 생경했었는데 지인 말이 이 소설이 중국 소설이라는 것이다. 중국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겼는데 마침 지인이 이 소설을 챙겨 주었다.


소설과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은 중국 작가, 위화의 중국 장편소설이다. 1996년에 출간됐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막 수립된 시기인 1950~1960년대의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리고 있으며, 등장인물로는 허삼관, 허옥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등이 있다.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문화 대혁명과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하정우 주연의 허삼관으로 영화화됐다.

본 작품은 중국어 이외에도 한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을 포함하여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소설의 배경이 1960년대 중국이다 보니 다소 심 파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영화는 처절한 부성애를 다소 눈물을 자아내는 80년대 한국영화 느낌이었다면 소설은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가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버텨내는 처절한 모습을 깊이 있게 다뤘다.


겨우 먹고살면서 큰 고비의 순간이 올 때마다 허삼관은 피를 판다. 그렇게 아이들이 장성하고 첫째 아들, 일락이의 급성간염으로 온 가족이 위기에 빠진다.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생사를 건 여러 번의 매혈을 강행하는 허삼관의 모습은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시대는 다르지만 지금을 사는 한국의 아버지들도 박봉으로 자녀 교육까지 엄두가 나지 않아 투잡을 갖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그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최근에는 사망사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와 겹쳐졌다.


1960년대나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나 여전히 자식을 낳아 양육하고, 생존함에 있어 얼마나 처절한지 별로 달라지지 않음에 묘한 분노에 한숨이 나왔다.

나 또한 한 직장에서 10년을 넘게 장기근속을 하고 있지만 터무니없는 급여로 두 아이들과 생활과 생존의 애매한 경계에서 살아내는 막막함은 매달 반복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막막함 그리고 희망 없이 그저 한 달 한 달 월급쟁이로 사는 삶에 잦은 한숨이 난다.
나와 닮은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의 푸념...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

허옥란은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잠시 후 돈을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는 눈물을 닦았다. ]




허삼관 내외가 자식을 키우면서 먹고사는 일에 고심하면서도 여유롭게 그 고비들을 넘길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상황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비결은 삶에 대한 해학과 유머이다.

["자,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저도 홍사오러우요. 전 다섯 점 썰어주세요."

"좋았어. 이락이한테는 다섯 점을 설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씩 해서 물에 넣고 삶은 다음, 식혀서 다시......"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 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살킬 차례가 아니잖아."
그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이락이 고기 다섯 점을 기름에 볶아서 간장을 뿌리고, 오향을......"

"아버지, 삼락이 가 아직도 침 삼켜요."
"삼락이 가 침 삼키는 건 자기 고기를 먹는 거야. 네 고기가 안잖아. 네 고기는 아직 다 안 됐잖니...."]

이 부분은 읽는 내내 너무 웃음이 나서 몇 번을 반복해서 보면서 웃고 또 웃었던 부분이다.
눈물과 한숨이 삶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한다면 이러한 작은 웃음이 냉랭한 공기를 따습게 데워주고, 그 공기 또한 가볍게 하리라.

한 가정의 아비와 어미의 역할은 그저 생계를 위해 일개미처럼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마음까지도 헤아려 어둡게 잔뜩 찡그린 가족의 마음까지도 뜬금없는 겨드랑이 간지럼으로 온몸을 흔들흔들거리며 가볍게 털어내줄 수 있는 내공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이 곤궁할수록 친구와 먹는 고기 한 점에서도, 멋지게 플레이팅 되어 나오는 고급 음식 한 접시에도 어미로서의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 그런 날이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과감히 가족회식을 감행하며 무거운 집안 공기를 환기시키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삶이란 참 지루한 여정이다.
그 여정을 어금니 꽉 깨물고, 아득바득 앞만 보고 가느냐, 주먹 쥔 손을 펴고 없는 여유라도 쥐어짜가며 가족과 주변인들의 등을 도닥이며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치열하지 않은 삶과 생존은 없다.

하지만 그 생존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꽉 쥐었던 마음의 주먹을 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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