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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Feb 23. 2020

너무 진지하지 않고 가볍고 자유롭게 나부끼며 살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 리뷰





주문한 책이 하루 만에 도착했다.
받아 든 책은 무게도 부담스럽지만 두께만 보아도 벌써 가슴이 답답해 왔다. 심지어 작가가 철학자다. 망했다....


고전소설처럼 시작부터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도 없어서 번역자를 탓해 보기도 하면서 이래저래 휘리릭...(도 안되지만...) 속도감 있게 읽어보려 애써본다. 하지만 그 조차도 나의 못된 강박적인 성격으로 쉽지가 않다.

소설의 반을 읽었다.
그래도 모르겠다.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누구처럼 영화를 먼저 봐야 하나 싶었지만 꾹 참고 책을 읽었다. 소설의 거의 끝자락에 나오는 마리아 주앙의 이야기에서 마음이 멈췄다. 서너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사진출처:네이버 검색>


줄거리는 평생 교사로서의 삶을 살던 그레고리우스가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던 여인을 구해주면서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그날 서점에서 어떤 책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일상을 뒤로한 채 리스본행 열차를 타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 여행의 중심인물은 그가 서점에서 받은 책의 주인공 프라두이다.
그의 어렸을 때부터의 일생에 남겨진 편지글을 통해 프라두의 사후 인생의 발자취를 찾아가게 되는 그레고리우스.

원리원칙과 자신의 틀을 고집하면서 살아온 주인공과 꼭 닮은 인생을 살아온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편지에 나오는 인물들과 한 명 한 명 만나서 주인공 프라두를 알게 되고 그 주변인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그레고리우스 자신 또한 책의 저자, 프라두가 감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과 소통으로 서서히 변화를 경험한다.  


소설의 절반 이상을 읽어가면서 비로소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만났다.
그것은 책의 주인공, 프라두의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그의 여자 친구였던 마리아 주앙을 만나는 대목이었다.


중등학교 시절 프라두가 쉬는 시간에 주앙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던 편지를 말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건 연애편지가 아니었어요. 내가 바라던 게 쓰여 있는 편지가 아니었어요. 늘 아니었죠...... 그는 나를 자기 사유 세계의 주민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가 말했지요. '그곳에는 너밖에 없어. 나 말고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이 얼마나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관계인가? 가슴이 내려앉았을 주앙의 마음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주앙이 정말 중요한 사람인 사실에 대해 혼자 열에 들떠하는 말들이 내가 주앙인 양 너무 아팠다.

많은 사랑의 경험은 없지만 어렸을 때 풋내 가득한 어린 사랑의 기억이 스쳤고, 주앙이 '늘 아니었죠'라는 말에서 마리아 주앙은 프라두를 향한 뜨거운 열기를 혼자 식혀가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감하니 감정이 더욱 이입이 되었다.

프라두가 사랑했던 마리아 주앙과
에스테파니아.

소설 속에 두 여인의 글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꽃이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검색>

마리아 주앙은 순백하며 향기로운 플루메리아꽃을 닮았고, 25살의 에스테파니아는 부끄럼 한 점 없이 과감하게 수술을 드러낸, 검붉은 하이비스커스가 연상되었다.


매력이 넘치는 두 여인이 사랑했던 프라두.
그 남자 또한 외모나 갖춰진 상황들이 매우 훌륭했지만 여인을 사랑하기에는 무척이나 미숙했던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소통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고고한 감정과 신의를 오랫동안 지켜내기 위해 주앙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주앙의 감정이나,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고,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기적이게 그녀에게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대답과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린 에스테파니아의 두려움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녀가 뱉은 '당신은 너무 허기져 있어요.'라는 한 마디에 심하게 상처 받고 그녀를 밀어낸다.

이 또한 일생동안 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강력한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 관계를 회복하는 노력조차 왜 할 수가 없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이 또한 그가 관계에 미숙하다고 밖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감정과 관계에 미숙한 그가 두 여인에게 준 것은 형벌 같은 희망고문과 기다림이었고 냉정한 이별이었다.

그가 자신의 상처에만 몰입되어 있을 때 그가 떠나버린 차 안에서 혼자 몇 시간을 외롭고 슬픈 눈으로 자신의 방을 바라보면서 그의 평범한 사과나 이해의 한 마디를 기대하고 있었을 에스테파니아의 상황을 생각하며 그 흔한 사과나, 물음조차 건네지 못하는 프라두의 못난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누가 보아도 이기적인 모습이다. 왜 그는 그런 자신을 깨닫지 못했을까?


서두에서 그가 수많은 편지와 글을 써대며 떠들어 댔던 삶에 대한 철학의 글들이 모두 허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설의 중심인물이 매우 지적이고, 신의가 가득하며, 귀족 의사였지만 소설을 덮고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열병 같은 사랑 한 번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채 미숙한 어른으로 책임과 의무에 둘러싸여 살았던 그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사진출처: 네이버 검색>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코 가볍게 생각하거나, 그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으로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근본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에게 감춰져 있던 한없이 어리고, 나약한 어린 모습을 끌어내어 마음껏 뛰어놀게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유치하고, 옹졸한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기도 하면서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게  한다. 즉, 사랑은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하고, 더 알게 되는 경험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정을 프라두는 경시했고, 멀리했다. 그리고 그의 생의 마지막 즈음에 만난 사랑에서 또한 그 좋은 경험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에게 주어진 짧은 생에 놓친 것이 많았고, 경험하지 못했으며, 충분히 행복하지 못했던 그가 한 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 속에 고심했지만 자신에게 무척이나 엄격했던 그였기에 더욱 불행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더라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충분히 유치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걸 인정했더라면....

그에게 신이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하여 두 번째의 사랑을 '우연'이라는 선물로 만나게 해 주었더라면....

한 인간으로의 생에서 당연히 있었어야 할 사랑과 믿음, 그리고 소소한 행복의 맛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어떤 사람도 인생의 마지막에서 후회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대한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프라두의 불행한 인생에서 소소하고, 질긴 나의 행복을 보았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일까?
나는 소설을 덮고 오랫동안 행복이란 무엇이고, 그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 번 재,
나 자신에 대해 타인과 지나치게 다른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버릴 것.

두 번째,
그 어떤 한계에 다다르더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

세 번째,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어떤 이름으로든 내 감정을 제일 먼저 희생시키지 말 것.

네 번째,
찾아든 우연을 절대 가벼이 여기지 말 것.

다섯 번째,
지나치게 진지하기 않을 것.

여섯 번째,
아이처럼 자주 웃을 것.


써내려 간 것들을 찬찬히 보니 행복하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은 무척이나 소박하다. 프라두의 책에서 그레고리우스가 번역한 부분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 부분을 읽고 나의 책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소리 없는 우아함.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이런 경험은 폭음이나 불꽃이나 화산 폭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 무음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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