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본인은 확진자도 아닌데 병원 진료를 못 보게 해서 **팀으로 민원을 냈어요. 오늘 병원 관제자분에게 연락을 받았고,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여서 수긍을 했습니다.
어제 전화를 잘 받아 주셨던 직원분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고, 지금 전화 통화하시는 선생님께도 친절하게 잘 응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려요. "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하루에 무작위의 사람과 200건이 넘는 업무를 본다. 그중 전화민원은 100건 정도 된다. 전화민원과 대면 민원 업무는 같은 무작위의 사람이어도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전화민원이 훨씬 더 공격적이고, 감정 폭발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꼭 같은 업무를 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한국 사람은 다들 화가 나 있는 것 같다고.
그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정조절에 미숙하다는 뜻이다. 화를 터트리고 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십 중 팔구의 사람들이 던지고 가는 말은 '아!!! 진짜 짜증 나!!!'이다.
본인의 화를 본인이 소화를 못 시키고, 감정조절에 미숙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미숙한 부분을 전혀 모르는 타인인 사람들에게 분을 터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년 가까이 이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위의 민원의 말처럼 공손하고 예의 바른 민원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이유 모를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와 코끝이 빨개졌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제대로 된 응대를 했으면 제대로 된 인사말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왜 우리 한국사회는 이토록 당연한 일에 감동의 눈물이 나는 사회가 된 것일까?
많은 민원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장애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담당자 자체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있는 부서에 발령을 내면 직원들이 휴직을 낸다.
어떤 이유에서든 화가 나기 시작하면 입에 담지도 못할 육두문자를 면전에 쏟아 붓기도 하고,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게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고함을 친다.
'아가씨, 아줌마, 야!, 싹수없는...'이런 단어들은 그들에게 흔한 단어와 어휘들이다.
나는 이런 곳에서 청경도 없이 스스로를 지키며, 욕받이를 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상사에게 청경이라도 배치해 달라고 1년 가까이 청을 올리고 있으나 '민원의 백 명 중 한 명은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잖아!! 유난스럽게...'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 자리에 와서 앉았다가 사내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욕받이를 하라고, 그런 일도 감당하라고 월급을 주는 거고, 세금을 주는 거지'라는 말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상담사가 물었다.
"제가 파괴되는 느낌이에요."라고 말을 하고 터진 눈물 때문에 한참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거나,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조립할 수 없는 인간이다.
응당한 대가를 주고 남의 성을 사는 일은 범죄라고 하면서 월급을 준다는 이유로, 세금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인신공격을 하며,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 왜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영혼이 파괴되면 사람은 신체적으로도 병이 생기고, 영혼이 병들어도, 육체가 병들어도 둘 다 모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같은 부서 상사들도 최소한의 보호나 방어를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심한 모멸감을 견디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고급진 말로 생계를 위해서 내 인격까지 파괴시켜가며 먹고사는 일이 지금도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일상적이게 벌어지고 있다. 생계의 신성함을 알량한 몇 푼의 돈으로 값어치를 바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자신의 화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같은 인간을 이렇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상담사는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입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전화 안내 메시지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가?
나는 당신과 똑같은, 우리 엄마의 딸이고, 우리 두 아이의 엄마이고, 당신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