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지는 별 Mar 25. 2020

먹 멍(먹태를 찢으며 멍 때리기)

일상 이야기

"먹태야...
넌 어디서 왔니?"

너의 포슬포슬한 몸뚱이 두 쪽을 펼치며 내가 물었지.

죽 었든, 살았든 어차피 나는 너의 언어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니 네가 편안히 누워 있던 맑고 투명한 비닐의 친절한 상표를 본다.

'아.... 러시아에서 왔구나...'

그래도 통 먹태를 찢어본 경험이 처음이 아닌지라 꼬리지느러미와 붙어있는 등뼈를 똑!! 부러뜨려 결을 따라 머리까지 쭈 우우 욱!!!!!! 찢는다.


"아.... 먹태야... 미안..."

잘 말려진 너의 몸뗑이와 껍질은 완벽히 분리되고 노르스름하고 촉촉한 살결을 따라 잘디 잘게 찢는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손톱 끝으로 잘게 찢으면서 어렸을 적 엄마가 여섯 식구의 입을 먹이기 위해 큰 설거지 통에 한 가득 담아온 콩나물 머리를 조용히 똑똑 따던 생각이 났다.

머리보다 손과 발을 많이 움직여서 먹고살았던 그 시간....

지금 우리는 너무 머리만 많이 쓰고, 손과 발은 상대적으로 먹기 위한 소소한 활동을 너무 게을리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긴 시간 콩나물 대가리를 똑똑 딸 때의 작은 소음과 함께 조용히 스며드는 평화로움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평화롭다...

먹고살기 위한 머리 전쟁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돌아와 이렇게 먹태의 곱고 촉촉한 살결을 찢어가며 느끼는 고요와 무념무상의 시간에서 내일을 다시 살아낼 마음의 속살이 차오른다.



 물기를 다 빼앗긴 먹태는 살과 뼈와 껍데기, 그리고 머리조차 남김없이 나의 입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3초라는 짧은 기억력을 가진 물고기에 지나지 않지만 그 작은 존재가 이렇게 남김없이 사람에게 좋은 먹거리가 되어 주는 것도 고맙지만 이 작은 노동에서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편안한 실소 한 자락으로 나의 고단했던 하루를 내려놓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