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세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힘이 센 종족이 얼마나 오래도록 제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로 슬펐는지.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
"나는 우리 딸이 전 남자 친구를 집에 데려왔었는데 내가 반대했어요. 그 집이 아빠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결혼을 생각해 두고 인사 오는 건데 저는 그냥 안 된다고 했어요. "
"맞아요. 문제가 있더라고요. 한쪽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저 같아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아침에 직장동료인 두 분이 하시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나.
딸의 상견례를 준비하면서 나눈 대화에 나는 끼어 들 수가 없었다. 내 딸과 아들도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었으니까.
굳이 부부가 있는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 대한 장단점에 대해 서술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상황들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단지, 내 가족, 내 일에서 그들과 마주했을 때, 그들과 관계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누구나 망설일 수 있는 주제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딸이 곧 20살이 되는 시점이니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상황이 생긴 김에 책을 보다가 끄적끄적 글을 적게 되었다.
나의 딸 가영아... 엄마 아빠의 이혼이 너에게 미안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꼭 하나만 기억하렴.
너의 소중한 인생과 행복이 그 누군가로 인해서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지 않도록 말이야. 그 사람이 부모가 되었든, 너의 남자 친구가 되었든 너와 관계함에 있어 너 자신을 오롯이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나.
완벽한 조건의 사람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고, 어렵게 지나온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라고 해서 꼭 불행하게 살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니. 엄마도 많은 결핍 속에서 지금의 어른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을 지나면서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지 않겠니?
갖춰지고, 완성되어진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러니 다양한 이름으로 관계의 과정에서 이름 짓게 되는 우정,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마주할 수 있고, 스칠 수가 있겠지. 부디 넓은 사람이 되자. 내 행복과 불행을 남의 탓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하면 그 조차도 안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생긴 상처들도 평생을 나의 숙제로 껴안으며 나를 수정해 가면 그뿐이까 말이다.
너라는 사람보다 너의 조건에 대해 집중하는 상황이 오거든 억울해하기보다 그들이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너와는 다르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구나.
엄마는 지금의 상황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상황 때문에 엄마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상황이 너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이 바로 너라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