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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Aug 03. 2020

높은 곳에 서 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나..


두통이 시작되었다.
올 것이 오고 있는 것이다.
신경과 약을 갑자기 중단했을 때의 금단증상이라고 의사는 말했었다.



신경과에서 정신과로 치료과를 전과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경과 여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고민했다.
담당의는 한시가 급하다고 했다.
조증의 증상은 매우 위험한 신호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퇴근해 아이들의 저녁밥을 차려주고 홀로 방에 불을 끄고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타협되지 않는 아들과의 힘겨운 힘겨루기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직장에서의 끝없이 반복되는 학대에 가까운 민원들의 일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 꺼진 방문을 열고 베란다의 창을 열었다.
모기장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옆방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한참을 서 있다가 모기장을 닫고, 베란다의 창을 닫고 내 방에 들어와 앉았다.
이 곳에 더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친구를 만났다.
고마운 친구...



한잔 한잔 술잔을 비워내며 말을 대신하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친구는 말없이 잔을 부딪쳐 주었다.
그리고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울음소리로 내 사랑하는 이의 가슴을 내 눈물로 적셨다.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품었던 비를 뿌린 후에는 살랑거리는 바람에 실려 말갛게 개인 밤하늘의 별을 보여 주듯, 내 가슴도 태풍의 뿌연 모래들이 가라앉고 고요하고 말간 연못으로 돌아갔다.



가슴의 통증도 사라졌다.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나는 3개월의 투약을 중단했다.  그리고 정신과 또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들을 양육하는 동료로 돌아간, 한때는 나의 남자였던 그에게 긴 글을 보냈다.
10년 전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컸으니 이제는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최대한 동료로서의 도움을 주겠노라고.
하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쉬고 싶다고, 이것은 허락이 아닌, 약속 이행의 시간이 왔노라고 전했다.



그는 읽지 않았다.
한참만에 그는 읽었지만 또한 답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제 좀 쉬어야겠다고.  20년 가까이 홀로 키워 온 엄마의 노력과 수고로움에 동의한다면 엄마의 쉼에 동의를 구했다.



엄마는 소통에 매우 능한 사람이지만, 아빠는 소통과 대화를  배운 적도,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일반인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달라고.  

결코 아빠가 엄마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보통 한국 남자임을 꼭 기억하고, 서로의 소통방법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꼭 일주일에 두 번은 와서 함께 저녁을 먹을 것이고,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나는 난간에 서 있던 나 자신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삶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로 내 주변이 가득한데 왜 나는 그곳에 서 있었을까?



지금 나는 한 가지의 답만을 찾았을 뿐이다.
내가 너무 지쳤다고.
나는 쉬어야 한다고.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나는 지금 쉬어야 한다고.
살기 위해, 함께 살아갈 새털같이 많은 날을 위해 나는 쉬어야 한다.



나 스스로가 그만하고 싶다고 결정했다면, 나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한다. 그래.... 쉬어야 한다.... 멈추어서는 안 되는 거다.  
인생 중반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에 나처럼 서 보고 싶다고, 서 보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않을까?
조금만 더 가기 위해 쉬어가야 한다.  잠시만 쉬자.  달라질 건 없지만 다시 일어날 힘을 버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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