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이 녹을 3월 무렵부터 3개월여를 내 아이들과 내 지인들에게 푸르고 싱그러운 자연을 선물해 준 고마운 작물들.. 이제 그 생명을 다하고 남은 어린잎까지도 알뜰하고 정성스럽게 씻어 담는다.
'고맙다.
별로 준 것도없는데 너희들이 나눠 준 누림이 무척이나 컸어. '
라고 속삭이며 작물 하나하나 쓰다듬는다.
6월이 되었다.
물을 주고 돌아서면 작물도 쑥쑥 자랐지만 풀들도 함께 열심히 자라났다. 무성히 자란 풀의 머리 끄덩이를 뜯으며 일주일 내내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금니 꽉 깨물면서 쏟아붓고 화풀이를 했다.
풀이 사정없이 뜯겨나가며 뿜어대는,풀의 절규와 같은 향기는 거친 호흡으로 흡입되어 나의 마음에 평화와 고요함을 선물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나 보다, 한없이 넓은 대지는 모든 생명을 품고, 토닥여 준다고.
자주 오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물을 줄까 말까 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밭에 도착하면 몰라보게 풍성해져 있는 작물들이 대견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열매도 고마웠지만 풀을 뽑아내는 나의 거친 손길만큼 독기 가득한 마음을 땅은 말없이 받아 주었다.
그리고 땅의 순한 기운으로 채워주어 무척 고맙기도 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물 중 연상추와 꽃상추, 그리고 로메인은 언제나 어김없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안겨 준 듬직한 작물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첫 아이를 키울 때의 당황스러움같은 느낌으로 키웠던 고추, 그리고 꽃만 펴내고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보며 조급함을 느꼈었다.
가지가 뻗을대로 뻗고, 작물끼리 얽히고, 설켜 흡사 밀림을 방불케 하는 밭을 보며 마음먹고 가지치기와 밭의 작물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끼는 마음에 그저 이쁘다, 이쁘다 하며 손도 못 대던 작은 꽃들과 열매들... 가차 없이 곁가지를 끊어내고, 겉 순을 따낸다.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열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두 아이를 키우는 내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몇 개월 방치한 탓에 여기저기 마음껏 뻗은 겉순과 곁가지를 정리하는 일은 오랜 인내심을 요구했기에 나는 농장 전용 몸빼와 장화를 신고 바닥에 주저앉아 가지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아래쪽의 잎과 가지들부터 제거해 나갔다.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무언가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일은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과 기다림, 그리고 수많은 상황 속에서 선택과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꺾어낸 가지와 잡초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절규 같은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내가 두 아이를 키워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무척 많이 들었다. 서툰 주말농장의 밭주인으로 키워내는 생명들. 돌아서면 자라 있고, 돌아서면 꽃을 피워내고, 돌아서면 가지를 쭉쭉 뻗어 나가는 작물들의 모습은 내 아이들만큼이나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생명은 참 신비하고 소중하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은 성장하고, 대를 이어가고, 사라진다. 어리고 강렬한 반짝임을 드러내는 열매들도 고맙지만 자신의 시간을 다 하고 꽃을 피워내고, 씨를 맺는 그 모습 또한 따스하다. 꽃대를 올리며 보잘것없는 작은 잎을 겨우 달고서 키만 껑충한 상추와 쑥갓을 뽑아버리지 않고 그대로 둔다. 그들의 성장과 생육함 그리고 스러져 가는 그들의 평생이 모두 아름답고 애틋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한 때는 자연 속에서 그 일부로 살아가던 존재였다. 비록 척박한 상황 속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한 수많은 위험과 위협이 생활화되어 있었겠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자연 속에서의 위험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생존하기 위해 나를 소모하고, 나를 갉아낸다. 점점 나란 존재가 사라져 가는 걸 알면서도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하루에 만나는 모처럼 맑은 하늘, 그리고 귀 밑 머리 야릇하게 간지럽히는 바람의 손길들을 느끼며 잠시나마 자연을 느끼지만 그 또한 잠시 잠깐의 스침이다.
생업을 버릴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땅과의 만남은 언어나 활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하고 회복시켜 준다. 인간은 지구가 가지고 있는 원소로 만들어졌다.
지구, 그리고 그 땅과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대지에서 태어나고, 대지에서 회복하며,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에 가 닿으니 삶과 생도 치열한 만큼 아름답지만, 처음 왔던 흙이 그 마지막 숨을 받아주는 것 또한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옮아간다.
땅에서 태어나 땅의 기운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스스로의 기원과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된 것은 아마도 땅과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과 겹치는 것은 아닐까?
책과 음악을 즐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지난 시간도 좋았지만 5평 남짓한 작은 땅에서 찾고 채워지는 경험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