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지는 별 Aug 17. 2021

쉼으로 애틋해지는 삶

휴일 중 생각의 잔가지들

야옹님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아침 공양을 준비해 둔다.  개미군단 진격 전에 드시러들 와야 할 텐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이 자꾸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가끔 챙기는 야옹이들 식사와  책과 커피 간단한 것들을 챙겨 집 앞 공원에 자리를 잡고 등을 기대고 앉았다.


철학이 가미된 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산만한 머릿속과 팔랑팔랑 이파리의 파르르 한 손짓에도 한눈팔다,  놀이터를 찾은 꼬마 손님에게 설레발 찬물 공양도 드리면서 한 페이지 넘기기가 어렵지만 급하게 읽을 일이 없다.


끊임없이 집중하라고 윽박지를 필요도 없고, 이해되지 않아 술술술 흘려 읽어도 머저리라 호통치며 등짝 때리는 사람도 없다.


마음껏 한눈파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되는 시간...

억지로 시간 되어 지 않아도 되고, 하기 싫은 일은 모른 척해도 되는 시간...


세상 잔인한 노예상인 같은 스스로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있는 시간...


그저 '괜찮다', '안 될 거 없으니 다 해도 된다'는 관대함 충만한 시간은  가슴 저 밑바닥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차오르게 한다. 비록 작은 집 앞 공원에 슬리퍼를 끌고 맨발로 밴취에 앉았지만 파란 하늘도 그 아래 바람 따라 흔들리는 모든 사물들이 완벽하게 아름답다. 그것을 소유할 수 없어도 잠시향유라 할지라도 지극한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삶이란 극단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숨통을 조여 오는 일상에서 양쪽 폐 가득 공기를 빠르게 흡입하듯 그 달콤함과 절실함은 극단적인 쾌감을 선물한다.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없는, 가난한 시간을 허덕거리며 살지만 덤이어서 고맙고 감사한 삶도 눈물겹게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텃밭에서 이른 가을걷이를 하고 집에 와서 곱고 황홀한 빛들 속에 한동안 정신이 멍하다. 흐르는 물소리에 정신 줄 놓고 뽀독뽀독 이들의 고운 살결을 느낀다.  서 방치해 두어서인지  흐물흐물해진  어린잎들이 물그릇에 담긴 물을 빨아들여  빠닥빠닥 부러질 듯 탱탱해진  푸성귀의 힘에 감탄한다.  

노란빛의 참외는 올해 처음 심었다. 7월 말이 되어도 제대로 자라지 않다가 텃밭의 작물들이 정리에 들어갈 8월 즈음에 주렁주렁, 쑥쑥 자랐다.  참외 표면에  중년의 수염을 닮은 까슬 솜털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맛은 또  목구멍이 따끔거릴 정도로 달다.


지구의 작은 생명체인 나로서는 그저 밭을 갈고, 물 거름을 주는 작은 노력에 비해 너무 큰 선물을 받는다.

구지 그 많은 작물을 소화할 수 없어 지인들과 나눠먹으며 얻게되는 소통의 즐거움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 여리고 순수한  자연에게 받는 다정함과 친밀함, 그리고 나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소속감이 무엇보다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세상살이모든 종이 우위에 상관없이 언제든 공여자와 수혜자 교차순환한다는 순리를 자주 확인하고, 확신한다.

그저 지금의 서로의 존재감만으로도 충분다.


언제 무릎이 꺽일지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기로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