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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Sep 19. 2022

처음에는 정말 감자만 찌려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감자만 찌려고 했다.  정말 감자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 텃밭에서 캔 감자의 양이 상당함을 감안해서 다섯 알을 추가했고 사각사각 깎다 보니 30년 전에 언니의 반지하 신혼집에서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던 매운 감자조림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그래... 어차피 감자는 찌면 되고 그 찐 솥에다가 양념 툭툭 넣고, 휘휘 저어서 참기름 톡!! 하면 끝이니까.. 뭐...'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구차한 이야기로 애초에 밥 먹을 생각도 없던 내가 밥을 짓고, 쌈장을 만들었다.  

흐르는 물에 상추를 씻고, 파를 썰면서 내가 먹고 싶 밥을 해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나의 아이들 가족들이 원하고, 좋아할 법한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냈고 가끔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가사가 억울하고, 화가 났었다.  


1년 전 심한 스트레스로 더 이상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하루가 내게 얼마나 달콤하고, 감사하게 다가왔는지를 느끼며 내가 얼마나 엄마로서의 당연한 노동과 책임에 지쳐있는지 새삼 깨달으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로도 되도록 주방과 멀어지고 싶었고, 최소한의 억지스러운 가사에도 마음에는 하기 싫어 짜증 나는 스스로를 달래 가며 해 내곤 했다.  그런 내가 우연히 감자 한 알로 시작해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억지스러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접하고자 나를 위해 밥을 짓는다.  대견하다.  이렇게 나는 많이 여유로워지고, 건강해지고 있었다는 생각에 내친김에 다시 태어난다 생각하고 미역국도 끓이기로 한다.  혼자서 배실배실 웃는다.  

초를 소복이 꽂은 케이크는 없지만 혼자만의 잔치다.  


'다음에는 또 뭘 해줄까?  뭐가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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