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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Feb 17. 2023

효순아.. 살아도 살아도 제자리다

내가 격렬하게 글을 쓰지 않게 된 이유

더 이상 글을 죽자 살자 격렬하게 쓰지 않는다.

그 또한 내게는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으면 글도 자주 쓰게 되고, 글은 또 하나의 올무가 되어 생각을 잡아 두었다.  늘 그 굴레 속에서 나는 쉼 없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시간 생각을 멈추면서 살고 있다.  생각이 삶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 생각이란 것이 결국은 결코 가볍지 않은 번민으로 번져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못다 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삶을 이야기하기에는 어쭙잖은 면이 있지만 많은 책에서 이야기하 듯,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지배적이다.

삶을 열심히 살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며 그 삶이 그 사람을 말해 주기에 굳이 세상에 변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예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중학생 어린아이였던 나를 앉혀두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씀하셨다.


"이 노므 세상... 효순아... 살아도 살아도 맨날 제자리다... 아버지는 이뤄놓은 것도 없고, 나이만 먹고... 마음이 영... 그렇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연배였던 아버지 말씀이 가슴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 슬픔이 이해되고, 그 회한이 고개 끄덕여지는 그런 나이가 나도 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끝도 없는 삶의 고리를 쉼 없이 돌아갈 수 있는 한 가장의 열정과 성실함이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눈물겹게 다가온다.


제자리걸음이어도, 무언가 내세울 것 없이 보잘것없는 연명의 시간이었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그저 걸어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무척이나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는 중이다.


삶은 계속된다.

그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그리고 우리는 그 반복되는 길을 끝가지 걸어 나가야 한다.

그 일에는 많은 용기와 희망이 필요하다.  그 희망이라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어도 나의 길을 살아낼 수 있다는 용기가 포함된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내 안의 나.

나로 충만한 나.

용기를 낼 수 있는 나를 존중하고, 나를 위로하며, 나를 응원하는 삶.

살아낼 수 있다.  나의 삶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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