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완서를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한국전쟁과 가족의 이야기들이 궁금증을 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은 자가가 40세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실제 작가의 이야기와 허구를 엮어서 만든 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경아는 전쟁 중에 다정다감한 오빠 둘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경아의 어머니는 산 송장처럼 주어진 명을 이어나갈 뿐, 그 어떤 삶의 노력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 듯 산다. 경아는 미군부대 PX에서 초상 화부로 일하게 되면서 '옥희도'라는 화가를 만나게 되고 가정이 있는 그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사랑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둘의 관계는 결국 옥희도가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경아 또한 자신을 쫓아다니는 태수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산다. 어느 날 남편 태수가 무심히 펼쳐 든 신문에 옥희도 화가의 유작전 기사를 우연히 경아는 보게 되고 유작전에서 그가 그렸던 '나목'이라는 작품을 보게 된다. 경아는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과거 옥희도에게 자신은 그저 스쳐가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작품은 유부남 화가와 어린 여자의 사랑이야기에 집중되었다기보다는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고 나서 어머니로부터 그 어떤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 어린 여자의 이야기와 전쟁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전쟁 중 오빠들의 죽음 이후 현실을 살지 못하게 된 어머니와 그 어떤 사람들과도 편하고 따뜻하게 관계하며 살지 못하게 된 경아의 인생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다가왔다. 어머니와 경아 주변의 사람들 속에서 경아 또한 섞이지 못하고 가슴속에는 언제나 날 선 부정의 마음으로 경아 또한 사람들을 자신의 마음에 들이지 않고 외롭고,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현실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경아 어머니와 닮아 보였다.
그렇게 세상과 타인들을 밀어내며 그 어떤 사람도 믿지 않는 경아가 옥희도 씨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강렬했다. 그러나 화가 옥희도만을 원하는 어린 경아의 마음은 늘 갈증과 절망감에 괴로웠다. 경아는 퇴근 후 옥희도와 여러 곳을 기웃거리며 뜨거운 몸과 마음을 나누지만 그럴수록 경아는 심한 갈증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경아를 짝사랑하는 청년, 태수의 모진 비난으로 옥희도는 가정으로 돌아가고 경아도 태수와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지만 경아는 결코 태수를 사랑한 적도 없었고 현재 자신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경아의 결핍은 옥희도와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한들 해갈될 수 있었을지 의문
소설이 끝이 날 때까지 경아라는 여인은 일상을 살아나가면서 옥희도와의 사랑이나 태수와의 안정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그 결핍을 채우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핍이라는 것은 꼭 전쟁이 아니어도 인간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결핍에서 오는 감정 또는 그로 인해 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편함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과 불행은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완제품으로의 목표보다는 망가졌어도, 결핍 가득한 상황이어도 그 결핍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것, 바로 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