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길을 걷다가 파란 하늘이 너무도 청명해 올려본 하늘. 그 하늘을 가리고 있는 가지들. 자세히 보니 가지에는 꽉꽉 옹골지게 어린싹을 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어금니 꽉 깨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미의 자궁에서 포근하고, 따뜻한 양수 안에서 태아가 유영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최근 읽고 있는 신혜우 작가님의 식물학자의 노트에서 산수유는 낙엽을 떨구면서 내년 봄에 피어날 꽃들이 수술과 암술, 꽃잎을 미리 만들어 꽃눈 안에 꽁꽁 숨겨둔다고 했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기억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서서히 끝자락으로 가고 있는 지금, 대부분의 식물들이 죽은 듯 말라 있지만 그 모습 또한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처음 도서관에서 표지부터 너무 마음에 들어 열어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세밀화에 마음을 다 뺏겨 버렸다.
작가의 약력을 소개해 본다.
신혜우 작가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이다.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세 번이나 금메달을 수상했고, 국내에 덜 알려진 생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의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작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세밀화를 그리면서 식물도 연구하고, 식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종을 알게 되는 기쁨을 나눔과 동시에 존재의 소중함을 갖게 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다섯 개의 chapter로 되어 있다.
각 chapter마다 그림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세밀화가 너무 아름답고, 멋져서 책의 내용도 구성지고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한 것 못지않게 책 넘김에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각 단락마다 인상에 남았던 부분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chapter에서는 고사리가 처음 수중식물이었던 사실이 무척 놀라웠고,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꽃이 아닌, 포자를 퍼트려 번식했다는 설명과 함께 어렸을 때 생물 교과서에서 봤던 포자낭과 포자 세밀화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두 번째 chapter에서는 옛날 흘러간 가요에 나오는 '부평초'가 개구리밥이라는 것과 개구리밥과 연관된 수중에 뿌리를 두면서 광합성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잎을 보호하려는 다양한 식물의 과학적인 노력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회전초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 서부영화에 모래바람에 떼굴떼굴 굴러가던, 이름 모를 뭉텅이의 그 무엇이 척박한 상황에서는 하염없이 떼굴떼굴 굴러 다니다가 비가 와서 젖으면 순식간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라고 한다. 다양한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며 오랜 시간을 걸쳐 진화한 인간처럼 식물 또한 적합한 환경이 될 때까지 오랜 기다림으로 번식하고, 진화하여 생존하는 모습이 지구에 잠시 머무는 생명체로써의 동질감을 느꼈다.
세 번째 chapter는 담쟁이덩굴, 댕댕이덩굴과 같이 약한 식물로 태어났지만 다른 가지나 물체를 밧줄을 감거나 강한 흡착판으로 기어서라도 생존하려는 강한 의지의 억척스러운 식물들을 소개한다.
2년 동안 주말농장을 하면서 무수히 캐내었던 다양한 잡초들의 억척스러운 뿌리가 생각이 났다. 밭에서 캐냈던 잡초 중에는 작은 고구마 같은 뿌리로 길고 곧게 뻗는 길이가 50센티미터가 넘는 것도 있었다. 그 질긴 뿌리는 엉덩이와 허리의 강한 반동으로도 뽑히지 않을 만큼 질겼었다.
그 기억이 나면서 인간의 소용과는 무관하여 명명하는 잡초라고 하는 그들 또한 인간만큼 살고 싶고, 번식하고 싶은 강한 의지의 생명임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같은 chapter에서 다양한 모양의 솔방울 세밀화가 나온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솔방울은 습도, 비, 기후에 따라서 씨앗을 보호하는 방법이 무척이나 놀랍고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다양한 색과 모양의 국화와 까만 씨앗 가득한 해바라기의 노란 꽃가루 부분이 사실은 아주 작은 꽃다발이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꽃의 외부 쪽의 작은 하나의 꽃잎만이 다른 색으로 길게 자라는 꽃을 설상화라고 한다는 이야기와 그림도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 chapter에서는 나무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뿌리는 물과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지만 뿌리를 통해 흙 속에 있는 곰팡이를 통해 환경 변화나 외부 침략자들에 대한 경고,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전달받고, 동종과 타종의 식물들과 경쟁할지, 공존할지를 선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소개한다.
식물과 곰팡이의 공생과 소통에 대한 부분에서 서로의 필요에 의한 관계이지만 그 또한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지구의 어떤 존재도 경쟁만 하면 모두 소멸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사실 또한 한번 더 마음에 새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즐겁게 탐닉한 시간이 무척 좋았고,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 식물이든, 동물이든 각자의 삶의 터전을 존중해 주고, 공존함이 인간의 존립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금 이기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더 가슴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