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천체, 우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진 것이 그중 하나이다. 철학으로 인생의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을 시작으로 명상을 만나고, 우주에 대해 궁금해하던 시점에서 김상욱 물리학 박사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을 만났다.
작가 김상욱은 카이스트를 거쳐 2018년부터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을 매우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현란하고, 유려한 글솜씨가 일품인 머리글만큼 공영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열정적인 그의 활동과 이력에 비해 책 뚜껑을 열자마자 보이는 자필의 필체가 흡사 아이의 필체라고 해도 될 만큼 꾸밈없이 맑게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났다.
예술은 우리를 떨게 만든다. 음악은 그 자체로 떨림의 예술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나의 몸과 마음도 함께 떤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에필로그 6p에서 발췌-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강렬한 끌림으로 홀린 듯 책을 구입했고, 머리글에서부터 큰 진동을 느꼈다.
책은 총 4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시공간. 그리고 지구, 세상, 사람을 구성하는 원자에 대해 소개하고, 2부에서는 삶과 진화의 이유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주와 시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법칙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리학이 생경한 나로서는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좀 어려운 부분들이 많기는 했지만 엷은 지식 바탕에 또 다른 지식의 덧칠을 기대하며 후루루 읽어간다. 그러다 이중성에 대한 단락에서 빛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빛을 낸다. 인간도 빛을 내고 있다. 그런데 왜 깜깜한 방에 들어가면 안 보이는 걸까? 사람은 체온에 해당하는 흑체복사, 즉 적외선에 해당하는 빛을 낸다. 인간의 눈은 적외선을 볼 수 없다. 적외선도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132P에서 발췌-
이 대목을 읽으며 '사람은 각자의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적외선의 빛을 내는 존재가 사람이고, 빛은 가만히 있지 않고 파동과 파장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유기적으로 많은 기능을 하는 생물, 물질로서가 아니라 비물질, 비가시적인 관점으로 인간을 분석하는 것에 무척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3부 '관계에 관하여'에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힘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두 입자 사이에 존재하기에 힘은 관계이고, 상호 관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힘의 관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기술한다.
질량을 가진 물체 주위에는 중력장이 펼쳐진다. 전기장을 흔들면 전자기파가 생기듯, 중력장을 흔들면 중력파가 발생한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172p에서 발췌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는 미세하게 떨고, 그 떨림으로 파장이 생긴다. 조용히 빛나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 별 각자의 떨림과 파장으로 빈 공간 없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우주 속에 작은 점만큼이나 미미한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주 그 어느 곳 하나 비어 있지 않고 다양한 힘이 역동적으로 서로에게 관계하며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명상할 때의 에너지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구체화시켜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기본입자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으며,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는 쿼크, 렙톤, 게이지 보손, 스칼라 보손으로 구성된다. 괴상한 이름들이지만 당신의 몸도 이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244p에서 발췌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는 특별한 재료로 되어 있지 않다. 그냥 원자들의 모임일 뿐이다. 우주의 모든 물체가 그러하듯이.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우주의 존재와 인간이라는 경이로움 244-251에서 발췌-
인문학과 철학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찾다가 물리학으로 옮겨서 보는 답들은 훨씬 더 광대하고, 웅장한 느낌이다. 인간, 세상, 지구에 국한되어 있던 나의 시각을 우주로 돌려보니 훨씬 납득이 쉽고, 생각과 마음이 확장된다.
물리학의 관점으로 본 인간은 그저 원소의 조합이며 그 어떤 생물이나 물질도 존재의 이유 없이 그저 존재하며 인간만이 존재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이 백 년도 안 되는 시간을 적어도 물질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는 좀 더 가치롭고, 열심히 살아내고자 하는 열정으로 해석되었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찾았던 삶의 이유와 나의 가치에 대해서 알고자 그 무게에 잠식당해 버거워하고, 삶을 회의하던 습관에 크게 방향키를 돌리게 만들었다.
또한 삶의 사소한 순간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하며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늘 무언가 놓치고 사는 것 같아 스스로를 불신하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저 살아가는 것, 생존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좀 더 가볍고, 즐겁게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비록 작은 원소들의 조합들인 인간이 물질로서 살도록 주어진 시간이 백 년도 안 된다면 원소의 무게감만큼 가볍게 떠다니며 즐겁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 비물질인 원소로 회귀할 때는 또다시 원소로서의 삶을 살아가면 그뿐이다.
마지막 맺음글에서 작가는 과학자로 훈련받으면서 가장 혹독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인간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 헤맸지만 나 또한 삶이 도대체 무엇인지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그 모름에 대한 인정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와 인생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에 기뻤다.
정확히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말할 수 없지만 그러기에 나의 선택지는 넓어졌다. 정해진 답이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다고 한들 크게 문제없다는 그의 말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의 높은 경사의 계단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던 타인의 삶이 내 것이지 않아도 된다는, 어쩌면 무척이나 평범한 사실에 이렇게나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다음에는 또 어떤 부류의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그 속의 나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