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찾은 병원 원장 앞에 나는 조용히 지시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정자세를 하고 앉아 있었다. 원장은 한참을 과거 종이차트를 훑어보았고, 이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가신 병원에서 잘 진료받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이제껏 투약받았던 내용을 확인하고, 왜 제대로 약을 먹지 못 했는지, 상담 갈 때마다 심한 자괴감에 힘들어했던 마음을 말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대학병원의 구조상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고 나 또한 더 이상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원장은 말했다.
"아... 그런 마음으로 병원을 1년을 다녔으면 너무 힘드셨겠는데요?.... 최소한으로 약은 드리는데 노란색 알약은 지내시는데 무리 없으시면 그것도 안 드셔도 되십니다. 아휴.... 그동안 너무 맘고생하셨을 거 생각하니 제가 다 마음이 아프네요."
"그리고 앞으로는 궁금한 것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보세요. 괜히 혼자서 걱정하시지 말고요. 병에 대해서는 우리 같은 사람이 문제 해결해줘야지, 환자 본인은 약만 잘 드시고, 관리하시는 거예요. 약 안 듣고,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바꿔드릴 수 있는 약 엄청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죠?"
나는 깊은 공감의 말에 일어나면서 눈물이 핑 돌아 나오는 길에 아이처럼 90도의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동안 정신과 약을 기피하며 느꼈던 자책감, 자괴감 그리고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불신, 불만, 현실적인 한계 등등 복잡한 감정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병원을 오가던 1년 만에 처음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었고, 밝아진 마음과 함께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과한 표현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만큼 나는 내 병은 나의 것일 뿐 그 누구도 함께 힘을 보탤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무척이나 외롭게 떨고 있었던 스스로를 확인하게 된 만큼 내 질환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크나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나 또한 의료직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만성질환자가 되고 보니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의료인이 아니라 수직관계에서 내원자를 대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공감이 주를 이루었음을 자각하며 나 또한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장기간 질환과 반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실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이 진실 앞에서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되며, 건강에 대해 자만해서도 안된다. 동정이 아니라, 내가 타인의 자리에 가 서 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공감과 동감이 가능하리라.
직업상 꼭 진심일 필요는 없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에게는 그 어떤 직업보다 진심과 공감이 스스로의 업무에 즐거움과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타적인 것에 앞서 자신에게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이 오랫동안 아프다 보면 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고독감이 자주 밀려온다.
오랫동안 투약하는 약도 자신을 돕는다는 믿음보다 자신을 서서히 망가지게 하는 것 같아 자꾸만 멀리하고 싶고, 그런 마음을 그저 사무적인 말투로 방법적인 면으로만 대하는 의사도 결코 자신의 질환에 맞서 함께 싸워줄 동료로 느끼기 만무하다. 그래서 만성질환자들이 많은 내과과 내분비내과 환자들은 의료진들에게 가끔 적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서운한 것이다.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직업의 성격상 따뜻함과 공감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것인 것처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 담당의처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공감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큰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라 생각이 든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늘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자꾸만 용기를 내어 내 질환에 대해 질문하면서 환자 스스로 자신의 질환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싸우거나, 화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