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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Oct 03. 2022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허가합니다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슬비 가득한 공원을 빠르게 걷고 싶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거리엔  인적이 거의 없었다.  공원도 나를 포함해 열명도 안 되는 사람들만 있었다.

공원 트랙을 도는데 발이 젖어서인지 발이 무거워 쉽게 속도가 붙지 않았지만 천천히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기억들이 지나갔다.

16살의 나는 하굣길에 폭우를 만났다.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기에  가방 속에 미리 챙겨둔 우산이 있었지만 장대같이 내리는 빗속을 우산 없이  혼걸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내리는 비를 맨얼굴로 맞았다.  딱딱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가슴속에 불덩이가 김을 뿜어내 듯  깊은 한숨으로 뜨거운 가슴을 식혔었다. 

어린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바위 덩어리를 얹고 살았었던 나.  속 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어렸던 나에게 말했다.


'차라리 어른들에게 혼이 나더라도 화도 좀 내고, 소리도 좀 지르고, 부모님 주머니에 손도 좀 대지...'


혼자 끙끙대며 앓았었다.  가족에게도, 종교로도 해갈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거나, 빗 속을 걸으면 답답함들이  나아졌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도, 지금도 비가 오면 우산을 들기보다 비를  맞기를 좋아다.

지금은 어렸을 때의 답답함은 없다.   비가 오면 포근하게 안정된 느낌이 좋아 물보라 같은 이슬비가 내리면 비맞고 싶어 진다.


지금의 시간이 있기까지 정말 맨땅에 헤딩 하기식으로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그 시간을 건너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엄청나게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이든, 타인이든, 심지어 자연에서든 다양한 방향에서 시기적절한 도움의 손길은 반드시 있다.  그 시간은 반드시 내가 건너야 하는 길이지만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지켜 봐주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눈을 질끈 감았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무도 없다 하지 말자.

지금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당신 곁에 생판 남인 내가 당신을 응원하 듯, 바람 한 줄기도, 국화꽃 한 송이도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뜬 구름도, 무지개도 아닌, 실체인 그 시간이 오기 위해  무겁고 답답한 가슴도, 쏟아지는 비를 맞는 일도,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그 걸음도 모두 필요하다.  무용한 일이란 없다.  그 모두 내 인생의 중요한 일부이다.


내 삶을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이 오면 지나온 인생에 있었던 불순물들은 자연스럽게 소각된다.  그러니 지금의 혼란의 태풍 속에 있어도 우리는 괜찮을 것이고,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 견디면 태풍은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또 견딜만한 날이 오고, 그리고 또 가끔 견딜 수 있는 폭풍이 온다. 그렇게 반복되지만 괜찮다.  조금씩이라도 걸음을 떼어낼 수만 있어도 충분하다.  폭풍 속에는 당신 혼자이지 않다.





출생을 제외하면 인생에서 절대적 기원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재생, 엇나감, 미끄러짐은 무수히 많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통행증, 각자 탐색하고 헤매다가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다.  모든 실패는 새로운 시도의 도약대다.  

행복한 삶은 불새와 비슷해서, 자기에게 맞서 일어나 주어진 바를 태우고 그 잔해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거듭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중 발췌(파스칼 브뤼크네르 저/이세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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