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산문 허송세월 책리뷰 3
쓰이기를 원하는 것들과 남에게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날에는 더욱 문장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런 날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끼어들고, 등장인물의 말투가 들뜨고 단정적 종결어미가 글 쓰는 자를 제압하려고 덤벼든다.
글이 잘 나가서 원고 매수가 늘어나고 원고료가 많아지는 날이 위험하다. 이런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공원에 놀러 나가기 전에 글 속에서 뜬 말들을 골라내고 기름기를 걷어 낼 때에는 남이 볼까 무섭다.
요즘에는 이리저리 주무르다가 버리는 말들이 늘어난다. 이런 말들 중에는 거대한 관념어도 있고, 큰 것을 도모했다가 헛발질한 문장도 있지만, 형용사나 부사가 가장 많다. 내버린 단어들을 다시 주워서 쓰기도 하고 오래 망설이다가 다시 끼워 넣기도 한다. 이런 파행은 오래된 것이지만 나이 들면서 더 심해진다.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143페이지에서 발췌-
현재 '2부 글과 밥'을 읽는 중이다. 각종 한시와 한자, 그리고 한글의 문법에 대한 내용들이 즐비하다. 주제에 맞게 글의 내용이 농밀하여 까딱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면 길을 잃기 일쑤였다.
역시 현시대의 유명한 문인답게 글은 힘이 있고 치밀하다. 그의 글을 읽을수록 내 글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는데 위의 진솔한 작가의 고백을 보며 먼 하늘의 별 같은 거리감에서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유려한 글이든, 투박한 글이든 모든 글 쓰는 이들은 자신이 써 내려간 글을 내놓기 전 수많은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나 또한 다르지 않기에 그의 솔직한 고백의 글이 다정함으로 다가왔다.
글이 세상으로 나오기 전까지 아직은 내 소유인 상태에서는 아무리 못난 글이어도 집착에 가까운 마음 때문에 조사든 부사든 작은 토씨하나 지워버리는 일이 쉽지가 않다. 이런 마음은 서투른 조작으로 연재글에 올리지 못한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것'을 쓸 때 정점을 찍었다.
분명히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자명함에도 쉽게 문장을 날려버리지 못해 더욱 난해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했고, 나중에는 글 자체를 모두 지우고 다시 써야 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퇴고를 마치고 발행된 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끄럽지 못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더 이상 퇴고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그렇게 높지도 않은 내 기준점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며 발행하게 되었음을 이실직고한다.
수많은 자괴감과 수치심을 딛고 글을 짓는 일은 내 안의 나와 충돌하는 일이며 꽉 움켜쥔 내 욕심의 손아귀를 느슨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글과 독서는 나를 겸손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 나의 한계와 나의 껍데기를 조금씩 벗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글과 독서는 그런 힘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는 내 가치의 지각을 흔들고, 새로운 시각의 탄생을 일으킨다. 이 감각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 잊을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다. 이를 중독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중독성은 성실함을 가져다주고, 그 성실함이 책을 펴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습관의 길을 트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독서와 글쓰기가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비움을 경험하게 한다.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을 그대로 쏟아내고, 쏟아낸 것을 솎아내고, 그래도 안 될 때는 비워버리기. 그것은 실로 파격적인 일이다. 자발적인 놓아버림의 연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명상을 닮았다.
돌아보고, 놓아버리고, 가벼워지는 것. 그 속에는 허영과 수치심과 욕심이 있다. 그것들은 비워내고 비워내도 자꾸만 차오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수시로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발행한 글은 500편이 넘는다. 요즘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위의 다양한 감정들을 다시금 경험하고 있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내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글이 큰 자리매김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글로 마주하는 부족하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주하면서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을 때 새롭게 마주할 모습을 기대해 본다. 글과 독서로 함께 나이 들었을 나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