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 May 01. 2018

찰나의 설렘으로 기억되는 사람

어긋난 타이밍

작년 연말, 친구에게서 tvN 선다방 모집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송에서 선을 보라니, 짝이랑 뭐가 달라? 하며 웃고 지나쳤는데 올해 봄부터 방송이 시작한다는 예고편을 보았다. 그리고 매주 방송을 챙겨보게 되버렸다!


처음엔

- 아 진짜 답답하다

- 그래서 짝이랑 다른 게 뭔데?

- 그러면 제작진이 소개팅 상대방을 보고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1차로 이어주는건가?

하면서 방송 보면서도 다 대본 아니야? 하며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근데 왜 매주 챙겨보냐면 방송을 보면 진짜 저렇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소개팅에 나온다고? 진짜 저런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음에 든다고? 할 정도의 설렘이 나에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방송이기 때문에 그냥 연기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감정이 너무 진솔해보여서 이 봄에 나조차 그 설렘이 느껴진다. 대리 설렘이라는 점에서 나는 씁쓸해지곤 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다시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복잡오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래도 꿋꿋히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벌써 재작년 일이다. 재작년 나는 생각치도 못한 타이밍에 나의 이상형을 마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첫 눈에 반해버린 사람.

명동 튤립커피

결론부터 말하자면 짝사랑으로 끝났다.

재작년 일이니까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그 뒤로 명절 때나 안부인사를 보내곤 했지만 그는 다른 누군가가 있는 듯했다. 짝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그와 그의 상대에게도 해서는 안될 행동임을 알기에 참았다. 그도 그랬기에.


- 너 소개팅할 생각있어? 남자 만날 생각 없잖아?

친구들 만나면 자연스레 나오는 소개팅 이야기,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새삼스럽지만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사람 이후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설렘을 떠나 나와 취미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 속 취미가 통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고 그 설렘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기 때문에 비교 대상은 항상 그가 되었다.


글쎄, 어쩌면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쉬움으로 가득차 생생하게 남은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감정을 더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아쉬움까지 더해져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제주 앙카페&바

지금 그를 만난다면 재작년의 그 설렘이 느껴질까? 글쎄. 그건 장담할 수 없다. 재작년의 나와 그는 이미 시간을 건너 1년 반동안 또 다른 우리를 축적했을테니까. 그래서 매일매일 생각나진 않지만 꽃이 피고 여행가기 좋은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생각나곤 한다. 코스모스와 파란 하늘을 찍어보내줬던 그 사진도.


멀리서라도 그의 소식이 들렸으면 하지만 우리가 연결되어있는 곳은 없다. 아니, 알고 싶다면 어떻게든 알아볼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의 안부를 어림짐작하고 싶다.


찰나의 설렘이 어긋난 타이밍으로 오래 기억되는 사람. 새벽이라 그런가, 그 사람이 꽤 많이 생각나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드름 흉터 숨기기 프로젝트, 두번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