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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Nov 01. 2020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연필로 가득 그려진 아빠 사랑.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아빠의 18번 애창곡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택시에서 흘러나온다. 우리는 어렸을 때 아빠와 노래방에 가면 꼭 이 노래를 부르시곤 했다. 다른 노래들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아빠 생각이 나는 건,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전영록 아저씨랑 참 닮았기 때문인가 보다. 어렸을 때는 무슨 가사 인지도 모르고 따라 부르곤 했는데.


 결혼 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득 아빠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택시 라디오에서 우연히 나오는 아빠의 18번 애창곡, 아빠가 즐겨 드시는 음식,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아빠의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분들. 생각지도 못한 순간 아빠가 떠오르면 이상하게 울컥한다. 정작 아빠랑 만나면 별 다른 대화는 나누지도 못하면서.


 아빠 생각이 나면 자연스레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남긴다. 아빠는 바로 받는 편. 이번 주 토요일 늦은 오전에도 그랬다. 토요장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있는데  자리에 나이 드신 분이 잔치국수를 드시러 신 것을 보고 아빠 생각이 나서 바로 전화를 했더니 스크린 골프 중이라며 끊으라 하신다. 나중에 별일 없지? 라며 다시 전화가 오셨지만.


 약간 서운할 뻔했는데 아빠도 가끔 내가 보고 싶고 그런가 보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기에 찍혀있는 부재중 전화를 보면 아빠의 전화가 남아있다. 다시 전화해보면 “잘 살고 있나?”라고 물어본다. 약 30년 동안 아빠는 연필로 딸에 대한 사랑을 쓰고 또 쓰고 또 쓰셨나 보다. 연필이 짙게 배어 아빠에 대한 기억이 가득 남아 아빠가 보고 싶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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