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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27. 2020

그때의 성교육을 아시나요?

충격적인 나의 고등학교 성교육 내용

우리가 배운 성교육이 이랬다고?


  결혼식 후 신혼집으로 챙겨 올 짐을 가지러 거의 매주 주말 친정에 들르곤 한다. 추억 상자를 열어봐야 한다는 엄마 말에 친정에 들른 토요일 밤, 엄마와 동생이 모여 앉아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 적어온 일기장을 훑어보며 이런 얘기를 왜 적은 거야? 하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진로교육이라는 이름이 적힌 클리어 파일에서 고등학교 때 받았던 문서들을 발견했다. MBTI부터 각종 검사지를 보고 이런 건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지금 해보니 그때와는 다른 MBTI가 나왔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펼친 다음 장에는 ‘성교육’ 관련 문서가 있었다.


 “남성은 성욕이 더 많다는 점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한다.” “시각적으로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니 몸가짐을 정갈히 해야 한다.” 문서 내용을 읽다 보니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런 내용으로 성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모든 문서를 찢어버렸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용을 찍어놓기라도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하다.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나누면 좋았을 텐데.


 어렸을 때 짧은 치마를 입을 때마다 아빠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남자는 뭐든 여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짧은 치마는 위험하다.’ 등 아빠가 남자니까 잘 안다, 너가 조심해야 한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었는데, 심지어 엄마도 똑같은 말을 했다. ‘늦은 밤에 다니면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제발 일찍 다녀라.’ 등등. 어렸을 때는 그저 어른들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을 들으면 잔소리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성범죄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문제라는 것으로 비쳐할 말을 잃게 만든다. 물론 내가 조심하면 확률적으로 적어 보일 순 있겠지만 모든 사고는 확률로는 계산할 수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범죄는 피해자의 탓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 우리 사회는 특히나 성범죄에서 더더욱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걸까.


 최근 밥블레스유에 나온 이수정 교수님은 ‘기성세대들은 음란물에 대해 빨간 책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음란물은 성 착취 물이고 명백히 범죄물이라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2005년에 배웠던 나의 성교육과 지금 청소년의 성교육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상은 눈 깜빡할 새에도 빠르게 변하는데 관련 법안과 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생각은 옛날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무력해졌다. 사실 결혼 후 아이들만 봐도 출산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생각하면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아득해지곤 한다. 어린 시절 배웠던 교육을 혹시 미래의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니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 중 하나, 시각적인 것에 충동이 느껴진다는 내용인데, 이미 그 내용은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졌듯이 시각적인 영향에서 노출은 사실 상관이 없다. 캔자스 대학에서 있었던 What were you wearing?이라는 전시 내용만 봐도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는 성범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관련 링크 https://refinery29.com/en-us/2018/01/187927/rape-survivors-victims-clothes-exhibition​ )


 현재 학교에서 진행 중인 성교육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꺼내본 추억 속에서 발견한 나의 고등학교 때 성교육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부디 지금의 아이들은 그때와는 다른 성교육을 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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