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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립 Mar 03. 2017

북경 호욕(虎峪)산행후기

가을 초입에


--호욕(虎)산행기--        
 
시간은 흘러 가을이 되었고 사람들도 세월의 구속을 받으며 삶을 영위 해 간다.
단조로운 흐름 속에 명절 또는 이벤트를 만들어 일가친척이 모이기도 하고, 연인간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거나 조상을 기리기도 한다.
그 중 하나인 추석이 다가 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같은 목적으로 고향을 향했다.
우리 산악회도 이러한 명절의 영향을 받아 왕징에서 가까운 호욕을 금주 산행지로 정하고 카페 문을 활짝 열었다.
예상은 어긋나지 않아, 모여 드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오늘 한 명, 모레 한 명 이었고 어떤 때는 발아 하듯 고개를 내밀었다가 땅속으로 사라지며 취소 됐다.
 
그렇게 이삭 줍던 모은 참석자는 겨우 9명, 두 자리 수가 안 되는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차 안의 넓은 공허함이 추석만큼이나 풍성 해서 배낭을 드문 드문 놓고, 각자의 자리에서 다리를 올리거나 삐딱한 자세로 최대한 편안 했다.
지나는 시골 마을은 어디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료한 눈빛이 길거리에 가득했고 햇살에 비추어진 얼굴에는 삶의 훈장 같은 주름이 선명하다.
옆으로 지나가는 누렁이는 열심히 뛰어 가다 멈칫 차에 놀라기도 하지만 모퉁이를 도는 발걸음은 항상 뭔가에 바쁘다.
이러한 가을 일상이 가득한 촌락을 허물처럼 벗겨 두고, 빠져 나온 차량은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 했다.
관광지 패스 카드가 되지 않는다 하여 가장 강력한 현금으로 대체 하고 입장하니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 이었다.
언덕 위에 올라 앉은 포크레인은 산허리를 핥았고, 저수지를 파는 굴삭기는 목이 마른 지 호랑이처럼 몸 쪽으로 혀를 말았다.
하지만 배려 하는 마음은 덩치만큼이나 커 지날 때 마다 잠시 정지 하여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손을 들어 인사하니, 포크레인 창에는 들국 같은 순수한 답례가 돌아 온다.
계곡물은 공사로 흐렸지만 자연의 섭리에 순응 하듯 이내 맑아지며 보석 같은 은빛으로 폭만큼의 화음을 졸졸 인다.
우리는 상처 난 계곡을 가을빛과 함께 걸으며 스토리가 있는 간판은 너무 어려워 가볍게 지나치며 본격적인 산행 길로 접어 들었다.

좁은 산길에 있는 개울은  심심치 않게 잘라 건너는 재미를 주었다.
풀들은 여름의 꼿꼿함은 뒤로 하고 구부정한 허리로 길을 막았고 그 사이를 스치는 발걸음에는 가을 소리가 떨어진다.
옆으로 늘어선 이름 모르는 보라색 꽃은 마치 여러 마리 나비가 매달린 듯 군락을 이루었다.
발을 구르거나 건드려 보았지만 접힌 날개는 펼 생각 없이 그저 그 자리에 붙어 있다.
가을이란 다들 원숙함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알아 가며 폭포 앞에서 다 같이 휴식 했다.
절벽에는 실 바람에도 흐트러지는 물 줄기가, 모기 만한 낙차 소리로 겨우 연명 한다.
그렇지만 웅덩이에 모아 놓은 물은 가을처럼 깊어가서 바닥을 가늠하기 힘들었고 그 가운데는 이끼가 발 닿을 곳을 찾으며 바닥으로 뻗어 있다.
가녀린 폭포 앞에서 바람에 날리는 물줄기만큼이나 다양한 포즈로 기념하며, 꿀맛 같은 포도를 먹고  ‘풋! 풋!’ 경쟁하듯 씨를 뱉으며 쉼터에 맞는 자유로운 행동을 했다.
 
다음 단계 산행에는 가을을 넘는 다람쥐가 꼬리만 보여주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등산로에는 산쟈(山)가 가득 했다.
방금 지나간 다람쥐를 생각하면 이것들이 모두 밤이나 도토리였으면 좋을 텐데 하고 보니, 등산길 내 한 마리 청솔모 밖에 보지 못했다.
결과에는 항상 원인이 있는 법임을 자연 속에서 다시 확인 했다.
그리고 이어진 산행 길에도 노랗고, 까만 열매 만이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뒹굴 뿐이었다. 경사 급한 산행에서 숨이 목까지 차오르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짧은 휴식을 하며 3시간에 걸쳐 정상에 올랐다.
고문님의 말씀에 따라 멀리 연경시내, 해타산, 봉황타, 연화산 등을 눈으로 스캔하고 오른 쪽을 보았다.
멀지 않게 보이는 곳에는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능선들이 군집하여, 삼황산의 일부분을 떼어 놓은 듯 아름다웠다.
이러한 경치는 사진으로 담고 정상에서 식사 자리를 폈다.
공간 또한 9명이 앉기에 거의 맞아 더욱 오붓한 느낌 이었고, 무엇보다 유명한 산들이 굽어 보이는 곳이라 더욱 상쾌하다.
그리고 이곳은 맑은 산악회가 탄생한 곳이었다.
고문님 왈! 16년 전 어느 날 오늘 같이 그 자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눕거나 앉아서 휴식하며 우리도 뭔가 이름을 지어야 되지 않나 하는 말을 했단다. 그때도 북경은 좋은 공기가 아닌데 그날 유난히도 맑은 하늘이라, 그날을 기념하고 바라는 의미에서
‘맑은 산악회’로 명명 했다 함.
겨울이면 눈 꽃이 너무 이쁜 정상이라는 말과 함께, 성지 순례 같은 의미를 느끼며 하산 했다.
 
버스는 거룡관 장성으로 오게 하고 온길 반대편으로 하산을 시작 했다.
계곡의 길은 경사가 심하고 바위와 돌들이 많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해야 했고, 하늘이 보이지 않은 숲 속이라 습기가 있어 더욱 조심 했다.
그럭저럭 내려오니 삼거리가 있다.
이곳은 그 옛날 산 너머 갑순이가 갑돌이에게 가마 타고 시집오던 길 이었을 것이다.
또한 보부상들이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 넘나 들거나 승려가 도를 딱으며 밤의 공포를 떨쳐 내던 길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이으며 한 시간 가까이 내려 오니 언덕에는 외딴집 한 채가 있다.
마당에는 잡초가 고즈넉한 햇살을 받으며 계절만큼 쓸쓸 했고, 폐허 된 창으로 한때의 희노애락이 쏟아진다. 조금 후 개 짓는 소리가 끝나기 전 구선묘(九仙)촌이라는 마을이 나왔다.
과수원에는 배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가지가 활시위 같은 팽팽함으로 지면과의 간격을 겨우 겨우 확보 했다.
촌락의 노인은 길 묻는 나에게 본인 기준으로 너무 투박하고 공격적인 자세로 말했다.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꼬인 중국어를 회복 하느라 지금까지 느낀 감성을 누르며 간신이 답을 얻었다.
그리고 감사의 말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겸연쩍게 받았다.
이러한 것들이 세상의 처세에 길들어지고 포장된 매너와 말투보다, 정감 있게 느껴 짐은 무슨 연유일까!

이내 들어선 콘크리트 길이 1시간 30분이나 이어져 발 바닥은 아프고 따가웠다.
하지만 세상일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이 함께하는 법! 길가 대추 나무에는 꼭대기에서부터 익혀져 내려 오는 열매가 조박 조박 하여 먼 곳에서도 한눈에 알 아 볼 수 있다.
나무를 흔드니 해방된 대추들은 포장 도로, 내리막길을 럭비 공 같이 굴러, 앞서 간 사람 발길까지 갔다. 우리는 심심치 않은 재미를 느끼며, 장성이 우뚝한 거용관 톨게이트에서 기다리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라 5시가 채 안되어 왕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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