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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 Dec 23. 2020

밥 먹을 때 자꾸 눈에 들어오는 사람

가장 보통의 연애 (2019)

매일 그렇게 먹으면 술이 깨기는 해요?


예쁜 조명이 분위기를 돋우는 실내 포장마차.

술병을 따는 재훈(김래원)의 손길이 너무나 익숙해 보이자 선영(공효진)이 신기한 듯 묻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청첩장까지 다 돌렸으나 안타깝게도 파혼을 하고 만 재훈. 그 후로 맨 정신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거의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직장 내에도 파다했는데요,  연애에 관해 꽤나 시니컬한 선영의 입장에선 '10대, 20대도 아니고' 파혼 좀 했다고 '연애 처음 해본 사람처럼' 힘들어하는 재훈이 어쩐지 잘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선영) 나는 그냥 사랑에 환상 같은 게 없어요. 


재훈은 선영이 직전 남자 친구(*직장 회식자리에 꽃다발까지 들고 찾아와 진상 부리던 엑스)처럼 이상한 남자들만 만났을 거라 추측하지만 선영의 대답은 정반대였습니다.  


(선영) 난 보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선영이 만났던 '보통의 남자'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었기에, 사랑에 그 어떤 환상도 없고 '기대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다'는 선영. 하지만 재훈은 그런 생각을 가진 선영을 '불쌍하다'라고 말하며 진부한 행복론을 늘어놓습니다.  


(재훈) 진심으로 사랑하는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평생 바라보면서 서로 같이 늙어가는 거. 그게 인생에서 진짜 행복한 거 아니냐?


물론 재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혼자 고상한 척하는 재훈과 더 이상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 안 되겠다 싶은 선영이 분위기를 전환코자 술자리 게임을 제안합니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선영이 제안한 게임은 '입모양 읽기 게임'인데요, 정말 술이 너무 취해서 그러는 건지, 어떤 음흉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 선영은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단어들을 계속 입에 담으며 주위 사람들까지 민망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재훈이 '가지'라는 단어를 말하는 입모양을 보고서는 '자 G'라고 큰 목소리로, 그것도 여러 번 외쳐대는 식으로 말이죠.


술이 취해도 너무 취한듯한 선영을 데리러 다행히 그녀의 친구가 오긴 했지만 선영의 아무 말 대잔치는 계속 대는가 싶더니 급기야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나 키스대잔치까지 벌이고 맙니다. 술에 취하면 아무 말 대잔치와 아무나 키스를 퍼붓는 여자 선영. 술에 취하면 도로 공사용 표지판이나 비둘기 같은 아무 물건(동물 포함)이나 집에 갖고 들어가는 남자 재훈.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갖기도 전에 서로의 추한 민낯을 먼저 보게 된 두 사람은 과연 보통의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에는 연애에 관한 속설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선영) 남잔 많이 만나볼수록 좋다. 그놈이 그놈이다.

(재훈)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대나?

(병철) 여자는 한번 돌아서면 끝이야.

(소영) 바람피우는 거 버릇이고 습관이지 절대 실수 아닌 거 알지?

(관수) 헤어진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다. 사랑은 타이밍? 다 헛소리라 이거야.


그렇다면 이 영화에 나온 연애에 관한 이 수많은 속설들 중에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요?


연애는 해볼 만큼은 해본 재훈과 사랑에 관한 환상 같은 건 없는 선영은 얼마 전 겪었던 이별의 후유증으로 인해 누군가와 새롭게 연애를 시작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먹을 때마다 자꾸만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는 건, 그 사람이 자꾸만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연애세포의 정상적인 작동 신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요, 어차피 그놈이 다 그놈이고, 남자도 여자도 다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시시때때로 연애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든 연애를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순간은 오직 연애할 때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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