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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 Nov 01. 2019

이름은 달라도 같은 음식인 국수처럼

강철비 (2017) 

빨갱이, 배 안 고파?
우리 밥 먹고 가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북한 정찰총국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간 곳은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유명한 국숫집입니다. 곽철우의 군대시절 단골식당인 국숫집에서 남북한의 두 철우는 처음으로 식탁에 마주 앉게 됩니다.  


식탁에 올려진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곽철우가 먼저 맛깔스러운 비빔국수를 한 입 가득 후루룩후루룩 흡입하는 걸 보는 엄철우는 군침을 흘리면서도 왠지 눈치만 보고 앉았습니다. 남쪽 정부 공무원이 사주는 국수를 먹어도 나중에 뒤탈이 없을까 걱정되는 것이죠.


곽철우) 왜? 먹어~


곽철우에게 별다른 꿍꿍이가 없어 보이자 일단 국수는 먹어두기로 하는 엄철우. 앞에 놓인 잔치국수의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 본격적으로 입맛이 돌기 시작합니다. 수갑 찬 불편한 손으로도 허겁지겁 국수를 뚝뚝 끊어먹는 엄철우. 그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진 곽철우는 엄철우의 결국 수갑 한쪽을 풀어줍니다. ‘우린 같은 편’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영화 <강철비> 스틸컷


그렇게 두 명의 철우는 나란히 앉아 한 손엔 수갑을 찬 채 국수를 먹게 되는데요, 정신없이 국수를 먹는 엄철우가 순식간에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웁니다. 그리곤 좀 아쉽다는 듯 눈빛으로 곽철우를 바라보는데요, 두 철우는 이젠 눈빛만 봐도 제법 통하게 된 걸까요?


곽철우) 이모, 여기 자, 잔치국수 하나 더 줘요. 만두도 하나 더 주셔야겠다, 만두. 


얼마나 허기가 졌는지 두 그릇째도 뚝딱 비우고 세 그릇 째 국수를 먹으려는 엄철우를 보고 있자니 곽철우의 얼굴에 흐뭇한 아빠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러자 엄철우는 명색이 정찰충국 최정예요원인데 너무 허겁지겁 국수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구구절절 변명을 해댑니다. 자기는 개성에서부터 며칠을 굶었다는 둥 남쪽에 내려와 조사받을 때 엄철우를 주려고 사 왔던 햄버거를 곽철우가 다 먹어치우지 않았냐는 둥 말이죠.


영화 <강철비> 스틸컷


곽철우) 누가 뭐래? 먹어. 먹어. 


그런데요, 무진장 배가 고프기도 했겠지만 엄철우가 왜 이렇게 국수를 잘 먹나 했더니 우리는 ‘잔치국수’라고 부르는 이 국수는 사실 북한에 있을 때 엄철우가 즐겨 먹던 ‘깽깽이국수’였습니다. 


엄철우) 깽깽이국수가 참 맛있소.

곽철우) 깽깽이국수가 뭐야? 

식당주인) 저거이 깽깽이국수야. 


남쪽에선 잔치국수라 불리는 깽깽이 국수를 두 그릇은 더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전쟁 날지도 모르는데 ‘피난 안 가냐’는 곽철우의 질문에 대한 식당 주인의 한숨 섞인 대답을 듣자 엄철우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에 두고 온 엄철우의 가족들은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곽철우의 가족들에게도 전쟁이 위험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두 명의 철우는 가족들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든 전쟁만큼은 반드시 막아내야만 합니다. 




영화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북한 쿠데타 발생 직후,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기상황을 그린 액션 드라마입니다. 영화 후반부 핵전쟁을 막기 위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에 극 중 동명이인인 두 주인공의 한자 이름이 마침내 밝혀집니다. 북쪽의 철우는 ‘무쇠 철(鐵)’자에 ‘동무 우(友)’자를 쓰는 철우이고, 남쪽의 철우는 ‘밝을 철(哲)’자에 ‘집 우(宇)’자를 쓰는 철우입니다. 


그런데요,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철우인 것은, 이 영화의 제목인 <강철비>를 한자로 쓰면 ‘철우(鐵雨)’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한자와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발음은 모두 ‘철우’인 두 남자가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시무시한 강철비 ‘철우’를 막아내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같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두 사람이 결국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남한에선 ‘잔치국수’라 부르고, 북한에선 ‘깽깽이 국수’라고 부르지만, 결국은 그 국수는 같은 음식인 것처럼, 남과 북의 두 철우가 결국 같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가슴속에 같은 단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화(平和)’


이 두 단어는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같은 글자를 쓰고, 같은 의미로 쓰이니까 말입니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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