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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Mar 29. 2019

너무도 복잡한 디자인 : 무서운 철수

제1장 디자인이란 무엇인가_10

아직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철수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 때 배웠던 초등학교(당시의 국민학교) 바른생활에는 철수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철수는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철수는 늦잠을 자지 않고 스스로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아침인사를 드리고, 윗니 아랫니를 꼼꼼히 닦고, 아침식사를 감사의 인사를 한 후, 편식하지 않고 꼭꼭 씹어 먹습니다. 

그리고 어제 예습과 복습을 마쳐놓고 준비물까지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공손하게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는 바른 자세로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하여 듣습니다. 

물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을 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점심시간에는 역시 편식을 안 하고 꼭꼭 씹어 남김없이 맛있게 먹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서는 어머님께 공손히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어머님을 도울 일을 찾아 돕습니다. 참! 손도 깨끗이 씻습니다. 어머님을 돕는 일이 끝나면 바로 숙제와 복습, 예습을 하고 준비물을 챙깁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동네에 나와 친구들과 즐겁고 씩씩하게 뛰어놉니다. 절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는 손을 다시 씻고, 저녁을 마찬가지로 남김없이 꼭꼭 씹어 맛있게 잘 먹습니다. TV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잘 골라 봅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교양을 쌓기 위해 위인전이나 문학서적을 읽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공손히 인사드리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입고 즐겁게 꿈나라로 갑니다.     


이 철수가 여러분의 동생이나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섭지 않습니까? 

이 동생 앞에서는 행동거지와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철수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아이가 과연 우리 주변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경우이며, 이 모든 것을 다 지키고 살자면 참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혹은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내용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오래 쓸 수 있어야 하며, 생산하기 좋아야 하며, 가능한 가격이 비싸지지 않아야 하며, 사용하는데 편리해야 하며, 조형적으로도 창의적이어야 하며, 안전해야 하며, 더 나아가 사회와 문화의 반영이어야 하고, 새로운 인간의 생활가치와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디자인을 잘하고자 한다면 핸드드로잉, 3D Modeling을 배워야 하고, 디자인사, 디자인 방법론, 디자인 기획, 디자인 조사, 인간공학, 재료, 생산, 가공에 대한 이해, 조형원리, 색채학 등을 배워야 합니다. 게다가 창의력, 분석력 등도 키워야 합니다. 

심지어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기도 하고 인간이나 사회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도 하고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배우고 갖춰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입니다. 인터랙션 디자인, 서비스디자인,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포스트모던 디자인, 한국적 디자인, 소외계층을 위한 디자인, 윤리적 디자인 등등 너무나 많은 디자인 이슈들이 있어, 도대체 어떤 디자인을 하는 것이 좋을지 혼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열거하자면 좋은 디자인이 되기 위한 요소나 조건들이 이것만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지키는 디자인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무서운 철수와 같이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디자이너들이 지키거나 갖추어야 할 수많은 조건들이 오히려 우리 디자이너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어렵게 만들며,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수많은 디자인을 잘하기 위한 혹은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한 요소나 조건들 중에 어떤 것을 갖추고 지켜야 할까요? 


철수의 이야기로 되돌아 생각해봅니다. 단언컨대 완벽한 무서운 철수는 불가능하며 없습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철수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어린아이다운 철수’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철수가 때와 장소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를 일일이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건강해야 하며(體), 앞날을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며(知), 좋은 품성(德)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허약한 철수라면 우선은 운동과 식사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공부는 잘하나 교우관계가 원활치 않은 철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에 따라 우선시되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어린아이다운 모습을 갖추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을 잘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하는 조건과 요소들을 각 개인에 따라 모두 완벽하게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개인이 목표하는 바에 따라, 개인의 현재 역량에 따라 보충해야 하는 것이 다 달라집니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차근차근 채워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철수는 마치 국가대표선수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한꺼번에 기술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국가대표 선수가 그러한 역량을 갖추기 위하여는 오랜 기간 차근차근 역량을 갈고닦아 현재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미 세계적인 선수라 할지라도 모든 선수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선수는 없습니다.     



높은 산을 아래서 내려다보면 저걸 어떻게 올라가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구간을 끊어서 올라가다 쉬면서 차근차근 오르다 보면 결국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됩니다. 

어누 누구라도 한꺼번에 정상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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