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디자인진행요령_01
학생은 감성적인 디자인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감성적이라는 말은 너무도 포괄적이며 추상적이기에 감성을 유발하는 방법이나 담고자 하는 콘텐츠로 지속가능성과 한국 문화에서 찾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통에는 자연친화적인 개념들이 많기에 이를 잘 활용하면 지속가능성이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성 디자인이 가장 주요한 키워드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적 대신에 다른 콘텐츠나 방법을 대입하여도 감성적 디자인이 완성된다면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대상으로 가구를 선택하였습니다. 감성적 디자인이 중요하기에 경우에 따라 조명이나 생활용품 등으로 대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 진행은 마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여행을 위한 준비도 중요하고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겨 원래의 목적을 잃고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한다. 너무 낭만적인 여행은 마음은 풍족하게 되나 몸이 피곤하고 경비가 더 들 수도 있고 너무 계획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여행의 낭만이 사라지기도 한다.
디자인을 시작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 여정은 어떤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기로 한다.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 있어 실수를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일은 어떤 일이며,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일 그 자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왜 가는지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으면 학업의 효율이 떨어지고, 친구와 여행 가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어디를 가야 할지 상의만 하다가 결국 못 가게 되거나 가고도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이렇듯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나 초보 디자이너들은 명확하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방황하기도 하고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명확하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자신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디자인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거나 자신이 정한 목표가 명확한 상태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요령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될까요? 만일 그 사람이 3일을 굶은 상태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사람이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 여유가 없는데 배는 고프다면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고기만 먹었다면 상큼한 샐러드가 먹고 싶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는 ‘왜 먹어야 하는지’가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의자’를 디자인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러한 경우 실제로는 무조건 의자를 디자인하겠다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의자를 디자인하려는 이유가 어딘가에 숨어있습니다.
의자가 불편하여하려는 경우도 있고, ‘모든 사물은 인간에게 실용적인 기능 외에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라는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이를 의자로 풀어보려는 경우도 있고, 의자가 자주 망가지거나 고장 나는 것에 대한 문제 때문에 하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들로 의자를 디자인하여야겠다고 정해놓고는 그 이유(의자를 디자인하려는 이유)를 잃어버리고 ‘의자’를 디자인하려 한다면 디자인의 목표나 진행 방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무언가 먹고 싶다’라는 생각(욕구)이 드는데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하며 먹을 것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의자가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앉기 편한 의자가 목적이 되어야 하며, 실용적인 기능 외에 즐거움을 주는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거나 유희적인 의자를 디자인하여야 하고, 튼튼한 의자를 디자인한다면 구조와 재료에 대하여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디자인 진행 중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면, 내가 왜 이걸 하려 했지? 하고 하려 했던 이유(배경)를 되짚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가고자 하는 이유에 따라 정해지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7여 년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할 당시에 후지 제록스에 다니던 디자이너가 동기로 입학하였습니다. 동기이다 보니 그리고 사회에서 일을 하던 프로 디자이너이다 보니 항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각자 재직했던 회사의 제품 개발 지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제품을 개발할 때에 주로 내려오던 개발 지시가 ‘남미향 19인치 텔레비전’과 같은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지 제록스에서는 ‘긴자의 00 은행 2층의 외환업무 부서의 신입사원 2년 차 여사원이 쓰는 복사기’라는 형식으로 개발 목표를 내려준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명확한 제품 개발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어떤 외관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기능이나 사양이 필요로 되는지, 어떤 UI(user interaction)가 필요로 되는지, 어떤 영업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다양한 부서의 개발 목표가 명확해지며 또한 그것들이 종합된 하나의 상품으로의 성격도 분명 해지는 것입니다.
6하 원칙 : 후지 제록스의 개발목표의 예
1) 누가 사용하는 것인가? : 은행의 외환업무를 하는 입사 2년 차 신입 여사원
2) 언제 사용하는 것인가? :은행에서의 외환업무를 할 때
3) 어디에서 사용하는 것인가? : 긴자에 있는 은행의 외환업무부
4) 무엇을 사용하는 것인가? :(은행의 외환 업무분석을 통하여 복사/사무 관련 필요 기능 추출)
5)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가? :(신입사원을 위한 각 기능별 조작방법(UX) 추출 가능)
6) 왜 사용하는 것인가? : (은행의 외환 업무분석을 통하여 복사/사무 관련 필요 기능 추출)
민철홍(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 명예 교수. 한국디자인의 새벽)도 디자인의 목표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6하 원칙으로 디자인의 목표를 기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디자인 대상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디자인 목표를 명확하게 하여 치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결과를 평가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며 진행 중에 쓸모없는 일을 줄여줍니다.
학생들과 디자인 주제에 대하여 상담하다 보면 이 친구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할 정도로 주제가 복합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하며 한국적인 감성적 가구 디자인’ 같은 경우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멋진 디자인 방향 같지마는 이 경우 매우 중요한 키워드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 디자인을 진행 방향이 매우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잘못하면 디자인의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기로 합니다.
이를 분해하여 보면,
지속 가능(A) + 한국적(B) + 감성(C) + 가구(D)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학생에게 모든 키워드가 중요하겠지만 4가지의 키워드 중에 하나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3개의 키워드가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하나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2개의 키워드가 남을 것입니다.
학생은 이제는 더 이상 버릴 키워드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나 마지막 하나만 남기고 버리라고 하면 결국에는 하나의 키워드만 남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만 남은 4가지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이제 이 4가지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1) ‘지속가능성(A)’가 가장 중요한 경우 :
이 경우는 지속 가능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따라서 디자인 결과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했느냐 아니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나 원리를 한국 전통에서 찾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적 감성을 가질 것이라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 가능의 해결 방법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복안으로 가지고 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문화권의 지혜나 다른 방법을 동원해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목적이 지속가능성의 확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디자인을 가구에 대입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탐구하다가 가구가 아닌 다른 생활용품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2) ‘한국적(B)’이 가장 중요한 경우
이 경우는 한국적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디자인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결과에 한국적 특성이 잘 반영되었는가 아닌가 됩니다.
그리고 한국적이라고 하여도 그 범위가 매우 넓기에 여기에서는 지속가능성과 감성이라는 속성을 한국이라는 문화에서 도입하려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 한국적 감성이라는 말만으로는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이를 자연친화적, 통합적 등으로 보다 구체화할 필요는 있습니다.
한편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한국적이기에 디자인을 진행해가면서 한국 문화 속에서 지속가능성이나 다른 문화적 혹은 전통적 속성을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을 표현하는 대상으로서 가구를 선택하였습니다. 이 또한 가구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3) 감성(C)이 가장 중요한 경우
학생은 감성적인 디자인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감성적이라는 말은 너무도 포괄적이며 추상적이기에 감성을 유발하는 방법이나 담고자 하는 콘텐츠로 지속가능성과 한국 문화에서 찾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통에는 자연친화적인 개념들이 많기에 이를 잘 활용하면 지속가능성이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감성 디자인이 가장 주요한 키워드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적 대신에 다른 콘텐츠나 방법을 대입하여도 감성적 디자인이 완성된다면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대상으로 가구를 선택하였습니다. 감성적 디자인이 중요하기에 경우에 따라 조명이나 생활용품 등으로 대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4) 가구(D)가 가장 중요한 경우
이 경우는 무조건 가구를 디자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전통에서 가구의 공법이나 형태, 재료 등을 활용할 수도 있고 한국적 감성을 싣겠다는 가능성도 있고 한국 전통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올 수도 있으며, 한국적 디자인이 곧 지속가능성과 관계가 높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한국적 감성 가구의 디자인’이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 한국적이라는 속성이나 성격 혹은 방법, 개념을 어떤 것을 할 것인가, 감성을 담는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수많은 디자인의 전개 방향이 달라지고 가능합니다.
머릿속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개의 키워드를 조립하여 디자인 방향이 정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위와 같이 그것만으로는 명확하고 선명한 디자인 목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위와 같이 몇 개의 키워드를 하나씩 지워가며 가장 중요한 것을 남겨 놓으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조금은 선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과 과제나 논문 주제를 상담하다 보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디자인’,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 ‘보다 인간적인 디자인’, ‘사람들을 서로 교류하게 하는 디자인’ 등을 하고 싶다는 경우가 있습니다.
멋진 생각입니다. 그러나 추상적이며 포괄적인 ‘생각뿐’입니다.
이는 마치 어떤 젊은이가 자신이 조국을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 거리 청소를 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그것이라도 해야 합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디자인’,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 등은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에 해당합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디자인, 사회를 보다 부정적으로 만드는 디자인, 보다 비인간적인 디자인, 사람들의 교류를 끊는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디자인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디자인의 프로젝트의 목표가 아니라 모든 디자인 사고와 행위의 목표이며 근저에 깔린 철학적 배경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디자인’이라는 디자인의 궁극적 목표를 위하여 ‘내가 할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차를 타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을 쓰는 사람, 컵으로 물을 마시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명을 켜는 사람, 모바일 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