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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Apr 02. 2019

손으로 그리기 vs
컴퓨터로 그리기

제5장 디자인진행요령(프로세스별)_10

최근에는 디자인 시각화의 툴로서 3D Modeling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핸드드로잉 hand drawing도 중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쉽게 생각하면 3D Modeling보다 핸드드로잉이 빨리 그릴 수 있으므로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는 손으로 그리고 나중에 정교함을 만들어갈 때는 3D modeling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우 타당한 생각입니다. 


과연 3D 모델링과 핸드드로잉 어느 것이 좋은 수단인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3D 모델링과 핸드드로잉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손으로 그리기 hand drawing     


핸드드로잉은 강력한 발상 방법 : 머리보다 손이 빠르다

핸드드로잉은 매우 강력한 조형 발상기법입니다. 물론 핸드드로잉은 디자인 초기의 단계에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처음으로 실세계에 끄집어내는 매우 중요한 순간에 그 애매한 이미지를 빠른 시간에 그려볼 수 있는 매우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핸드드로잉을 일반적으로 표현기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드로잉을 발상기법이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를 가만히 기억에 떠올려 다시 생각해봅니다. 자 콘셉트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핸드드로잉으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합니다. 

처음에 하나를 그립니다. 다음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과연 머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손이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한참을 그리다 보면 콘셉트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그림의 장수만 늘어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그 이유는 머리보다 손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골프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골프를 배울 때, 몸의 한가운데 공을 놓고 멀리 곧바로 공을 쳐내야 합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스윙 연습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원을 크게 그리며 원심력으로 공을 쳐내야 하는데 공을 멀리 곧게 쳐내기 위해서는 공을 치는 순간에 임팩트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몸에 힘을 빼고 치는 순간에 임팩트를 넣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공을 치는 순간에 임팩트가 들어가지 않고 항상 먼저 힘이 들어가 땅을 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날아가기 일쑤입니다. 아무리 공에 맞는 순간에 힘을 넣으려고 해도 먼저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 힘을 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근육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힘을 줘야지’라고 생각하고 그 명령을 근육으로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머릿속의 한 곳에서 ‘힘을 줘야지’하고 생각하게 되는 의식과 근육으로 동시에 정보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근육으로 전달되는 속도가 백분의 몇 초 정도 더 빠르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힘을 주자’라고 의식되는 순간보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 더 빠르기 때문에 정확한 임팩트를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그리다 보면 의식한 것보다 손의 근육이 먼저 움직이게 되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정해놓은 콘셉트를 잠시 잊어버리고 그려진 그림을 기준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콘셉트와 멀어지기도 합니다. 


즉, 아이디어 스케치는 의식되지 않은 사고에 의하여 그려지므로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좋은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핸드드로잉은 강력한 발상 방법 : 창의력 향상 6원칙(머릿속에 있는 것을 비운다)

그리고 손에 의한 스케치는 3D modeling에 비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그림을 그려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새로운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본 글의 창의력의 제6원칙인 생각나는 대로 버리기에서 설명하듯이 창의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그려서 머리의 밖으로 내놓고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는 상태가 지나간 이후에 비로소 창의가 이루어지기에 빨리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버릴 수 있는 핸드드로잉에 의한 아이디어 스케치는 매우 강력한 발상기법이 됩니다.     


손이든 컴퓨터든 내 몸의 일부 같이

그렇다면 무조건 손으로 그리는 것이 좋을까요? 

언젠가 학교에서 디자인 드로잉 수업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 핸드드로잉이 매우 능숙한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초대하여 학생들에게 스케치 시범을 보이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는 수년 동안 끊임없이 스케치 연습을 하여 핸드드로잉이 매우 우수한 친구였습니다. 시중에 출판된 드로잉 책에 그 친구의 스케치가 많이 예로 소개되는 것만 보아도 수준급의 실력을 가진 친구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우선 그 친구보다 더 잘 그리는 친구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친구를 초청하여 시범을 보이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반갑기도 하고 하여 먼저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잡담을 나누던 중에 나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 이제 한 십 분정도 남았다고 했더니 빈 종이를 좀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작은 핸드 나이프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칼날의 곡선이 매우 유연하고 손잡이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문양이 조각되어있는 나이프를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왜 그리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학생들 앞에서 시범 보이기 전에 손을 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수없이 스케치를 했어도 손을 풀어야 잘 그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푸는 연습으로 이것저것 다 그려봤는데 이 나이프가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칼날을 그릴 때 보통은 머릿속에 정해진 곡선이 있는데 그 곡선이 그대로 그려지지 않아도 우선 그려진 선에 맞추어 칼날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진 그 선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도록 연습에 연습을 하면 어느덧 자신이 생각했던 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핸드드로잉을 잘하는 방법은 끊임없는 근육 훈련뿐이라는 것, 

그리고 근육을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치 오랜동안 운동을 하던 운동선수라도 본 경기를 앞두고 준비운동을 하듯이 근육을 푸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손이 생각한 대로 그리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머리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려진 선에 따라 그다음 선을 그리게 된다는 것 등입니다.


결론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훈련을 통하여 잘 훈련된 근육이 필요하며 끊임없이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리는 수단이 핸드드로잉이 되었건 컴퓨터가 되었건 수단에 의하여 그려지는 그림이 왜곡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훈련만 되어있다면 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 컴퓨터로 그리기 3D modeling

다음으로는 3D Modeling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최근에는 실무 분야에서는 거의가 3D modeling으로 진행하므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비켜갈 수 없는 도구입니다. 


3D 프로그램은 익히기는 어렵지만 한번 익혀놓으면 참으로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쉽게 편집이 가능하고 변형이 가능해서 많은 디자인 안을 파생시켜가며 디자인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3D를 사용하는 원래의 목적은 보다 리얼한 이미지를 얻는 것에도 목적이 있지만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는 디자인 이후에 개발과의 연계로 디자인으로부터 받은 3D 데이터를 이용하여 금형설계에 이용하는 등의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3D Modeling을 단순히 디자인 표현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3D Modeling은 실제로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으로의 입체 형성보다는 보다 수학적 알고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입체를 형성하여 이를 변형하는 방법으로 입체를 만들어갑니다. 

이는 아이디어 스케치의 첫 단계에 디자인의 이미지가 애매한 경우에 사람이 머릿속에서 입체를 떠올리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형태가 정해진 다음이라면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D Modeling을 사용하는 경우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조형이 아닌 도구가 제시하는 조형(컴퓨터로 그리기 쉬운 조형)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핸드드로잉일 때에 자신이 생각하던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 그려져 있던 선에 따라 그 이후의 선이 바뀐다고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3D modeling은 우선 입체를 만들고 이를 변형해가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때문에 도구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조형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툴에 의하여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초기의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3D modeling 툴을 매우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만 합니다.     

     


3D Modeling이냐 핸드드로잉이냐는 실은 선택할 수 없는 표현 도구입니다. 둘 다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표현 방법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이 다른 영역의 전문가와 달라지는 것은 바로 조형 창작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방법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이 두 가지의 표현방법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나 훌륭히 극복하는 경우는 실제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표현방법을 극복하는 것은 마치 서예가가 붓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입니다. 붓을 극복하지 못한 서예가가 훌륭한 서예가가 될 수 없듯이 이 두 가지의 표현 방법을 극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디자이너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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