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디자인진행요령(프로세스별)_14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은 어떤 의미로는 디자인의 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디자인을 아무리 고민하고 잘해놨어도 프레젠테이션에서 잘 전달되지 못하면 모든 노력이 다 무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디자이너들은 종종 주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중에도 수많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서적들도 많고, 경험자들의 좋은 조언과 충고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의 한 명으로 나름대로 좋은 프레젠테이션의 기준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저 좀 더 효과를 올리기 위한 테크닉들에 해당합니다.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의 혹은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대신하여 고민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디자인을 부탁한 사람들은 그 문제를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문제 이상으로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기대합니다.
따라서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문제를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의 전달이 곧 프레젠테이션의 내용, 말하는 태도, 결과에 배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진심으로 주어진 과제를 고민했을 때 비로써 가질 수 있게 되는 태도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외국의 디자인 전문회사의 프로 디자이너가 마치 모델과 같은 몸매에 너무나 멋진 슈트를 입고 너무나 멋진 형식의 프레젠테이션 결과를 보여주며 말 한마디 막힘없이 한마디로 나이스 하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을 보고 동경했던 시절도 있습니다.
그때 프레젠테이션을 끝난 후에 그 디자이너들은 마치 절대로 함락되지 않아 보이는 성을 점령한 장군 같은 기세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모습에 기가 질려 동경의 눈으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이후에 전혀 다른 프레젠테이션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발표자는 안절부절못하고 말도 더듬고 화면에 비치는 자료도 그리 세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발표자가 말하는 것에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 내가 왜 이 미숙해 보이는 발표에 공감을 하고 있지? 하고 자신이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앞서 이야기한 그야말로 세련된 프레젠테이션과의 비교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앞의 프레젠테이션은 발표자들의 그 세련된 모습만 기억이 나지 그 내용은 그 당시에 주변의 사름 들을 압도하기는 했으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는 실패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세련된 프레젠테이션(또 워낙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했었음)에 기가 질리기는 했었으나 그들의 발표에 마음을 열어 동조하지는 않았던 태도들이 기억났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프레젠테이션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는 못했으나 믿음을 주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났던 것일까요? 바로 태도입니다.
전자는 ‘어때? 나 멋지지? 그리고 너희들은 이런 문제가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전문 가니까 다 해결해 줄게’라는 태도였고, 후자는 ‘정말 직접 이야기하는 어렵습니다만, 이런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진심으로 고민하고 심사숙고해보니 이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디자이너들도 결국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바로 진지함입니다. 이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그저 디자이너를 자신의 명성을 더 높이거나 혹은 돈을 위하여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지한 태도는 좋은 디자인을 낳게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보통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나를 칭찬하는 사람, 잘난척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 진정으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됩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비록 계약에 의하여 단기간 만나는 관계이지만 우리 디자이너는 그동안만큼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진심 어린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나 그 말로 정리합니다.
"소피스트들의 언변은 그 당시의 모든 지식인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1999)
또 항상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마음에 넣고 있는 말입니다.
언젠가 일본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였습니다. 일본의 한 록 가수가 나왔는데 나이도 좀 있고(40대 정도?) 화장도 아주 요란하게 한 가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나는 말이 자신은 "연습할 때는 세상에서 가장 못한다고 생각하고 무대에 오르면 세상에서 가장 잘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혼자 일을 할 때는 자신이 가장 열심히 하거나 혹은 옳다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할 때는 ‘아.. 저... 준비가 미흡하여....’ 혹은 ‘아... 저...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등으로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그 가수는 연습할 때는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면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미친 듯이 에너지를 쏟아붓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팬들은 그런 모습을 보러 오는 것이지 우물쭈물하고 소심한 록커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디자이너가 성실히 노력한 결과를 말하는데 우물쭈물하여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모인다면 어떻게 남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진심을 담은 태도로 성실히 하지 않고 말만 화려하게 하여 설득하려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해놓고 진행해 놓고는 자신감 없이 우물거리는 모습도 좋지 못합니다.
너무나 어려운 말이지마는 ‘당당하되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게’ 발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해보면 이걸 어떻게 이해시키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시장의 규모나 제품의 성장률, 소비자의 소득 수준 등을 빌어 타당성을 설명하는 경우는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면 됩니다. 그러나 디자인의 형상이나 색상 등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디자인은 만들 수 있고, 팔아야 한다는 실제적 문제와 창의적이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정서적 문제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논리적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정서적으로 공감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음악과 그림을 감상할 때 논리적인 설명에 의하여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좋기 때문에 감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는 그 음악이나 그림에 정서적으로 동기 혹은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디자인 프레젠테이션도 이해를 시키기 위한 내용과 공감시키기 위한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언급합니다.
그의 강력한 프레젠테이션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물론 이미 그 이름만으로도 압도합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스티브 잡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의 프레젠테이션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명을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은 결국 설명입니다. 빡빡하게 적힌 내용을 화면에 비추며 그 내용을 그대로 읽는 듯이 설명한다면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처음에 잠깐 동안은 말을 들으며 화면을 같이 볼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이해가 안 된다던지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든지 집중력이 떨어진다던지 하면 그때부터는 듣던 말의 맥락으로부터 빠져나와 화면을 눈으로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귀로 듣는 설명과 눈으로 보는 내용이 서로 달라지며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는 것이 설명을 듣는 것보다 빠르기에 성격이 급한 사람은 프레젠테이션 시작과 동시에 이미 눈으로 자료를 훑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이미 제 기능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말로서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 설명을 보완하는 혹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화면에서 보여진다면 사람들은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충분한 설명도 가능하고 집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프레젠테이션은 자료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거들 뿐입니다.
따라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먼저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내용을 먼저 정리하고 이를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하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 준비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할 말을 열심히 정리해놓고 그것을 외워 마치 음악을 플레이하듯이 설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경우 정해진 시간과 준비하여 설명하는 시간이 같으면 잘 될 수도 있으나, 프레젠테이션의 시간은 안타깝게도 항상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준비할 때는 10분이 걸리던 것이 막상 실전에서는 13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중간에 질문이 들어올 수도 있고, 열심히 외운 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준비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가끔 시간에 맞추어 설명을 끝냈다 하더라도 설명에 집중을 하기보다는 발표자의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나 듣는 사람의 호흡을 배려하지 않은 발표 속도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학생들의 발표를 보면 항상 시간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 없으니 줄여서 간단히 발표하라고 하면 내용을 줄여 요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빨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발표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사실 대부분의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은 하나의 함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이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은 해야 합니다. 이 중에서 이것이 제일 좋습니다 등 아무리 내용이 많고 복잡해도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그 핵심적인 의미를 자세히 혹은 다양한 관점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프레젠테이션입니다.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발표를 준비하면 시간에 맞추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게 되고, 설령 앞부분에 중요한 내용을 빼먹었다 해도 나중에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내가 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나가서 “오늘 발표의 내용은 이것이군만은 기억하게 한다.”라는 각오로 발표하면 큰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