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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Apr 03. 2019

형태를 대중소로 쪼개기

제5장 디자인진행요령(프로세스별)_13

학생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프로디 자이 너와 결과물의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디테일입니다. 

학생작품에서 디테일 처리가 부족한 이유는 경험이 부족하여 디자인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테일만 잘 정리하여도 디자인 완성도가 매우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문제 발견, 개선방향 모색과 콘셉트 개발, 디자인 이 3가지의 단계 중에 첫째 두 번째 단계에 많은 힘을 씁니다.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라면 2개월 이상을 리서치와 새로운 콘셉트 개발에 쏟아붓고 마지막 2~3주 동안 콘셉트대로 디자인을 개발하여 프로젝트를 마감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도한 대로 디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프로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 단계의 비중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조사나 콘셉트 개발의 비중은 전체 일정의 20~30%를 차지하고 실제 디자인 개발에 70~80%의 비중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이유는 조사나 콘셉트 개발은 어디까지나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지침 혹은 방향을 잡는 단계이고 좋은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기 때문입니다. 


‘의도한 대로 디자인을 했다’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왔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어렴풋이 이 사실을 알고는 있겠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것은 디자인 조형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조형을 대중소로 구분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잘 아는 어떤 인물을 그린다고 가정해봅니다.     


대 (큰 형태, 전체적인 형태)

‘대’는 전체적인 형태, 큰 실루엣 혹은 큰 덩어리들의 구성 등입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사람은 머리, 몸통, 팔, 다리로 구성되어있고 대략 이러이러한 구성을 가진다 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그려놓아도 그것이 사람인지는 알겠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잘 구별이 안 갈 수도 있습니다.      


중 (큰 면, 덩어리, 기본 색채 등)

‘중’은 ‘대’에 비하여 보다 세부적인 부분들입니다. 체형이나 기본적인 골격의 구조, 얼굴의 대략적인 묘사, 입고 있는 옷 등이 더해진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이제야 남자이고 성인이라는 정도는 알게 될 것입니다.    

  

소(매우 작은 형태, 미묘한 색상, 질감의 차이 등)

‘소’는 그야말로 디테일한 부분들입니다. 눈꼬리, 피부색, 머리 모양, 손의 자세, 복장을 입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디테일, 미묘한 자세의 차이 등을 모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고 생각해봅니다. 

그제야 비로소 잘 아는 그 사람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 조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의 전체적인 구성도 있지마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모서리의 0.1mm 단위 차이로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며, 같은 색이라도 명도와 채도 그리고 광택이나 질감의 정도에 따라서 그 느낌이 모두 달라집니다. 

이렇듯 ‘소’의 세계는 수많은 디자인 요소들이 있으며 이 요소들 사이의 조화와 구성이 전체의 느낌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하여 얼마나 세부적인 요소들이 있는가를 이해하고 그 세부적인 요소들까지 치밀하게 콘셉트대로 조정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디자인 일정이나 이벤트 설계도 그 세부적인 요소(소)들까지 완성시키기 위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즉 학생들이 생각하는 일정보다 훨씬 빨리 전체 형태를 완성시킨 후에 치밀하게 ‘소’의 형태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의 중요성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디자인실에 취업하여 몇 개월째 업무를 배우며 실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차장님이 오시더니 진행 중인 디자인 시안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보여드렸더니 시안에 대한 평은 안 하시고 엉뚱하게 “박영목 씨. 영국 신사 정장하고 서울 뒷골목 허름한 술집 웨이터 정장하고 뭐가 달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디자인 시안들의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것을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입사원 때의 일입니다. 

디자인 인정검사라는 것이 있는데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들이 여러 개이고 각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도 서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지정해준 형태, 재료, 색상대로 잘 생산이 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디자인 인정검사라고 합니다. 

만일 이 인정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조립을 했을 때 부품끼리의 색상이 다르거나 하여 제품의 완성도 떨어지므로 매우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 당시 대리님의 지시로 어떤 부품의 인정검사를 하러 면회실에 나가 업체로부터 생산된 부품을 받아 우리가 발행한 칼라 칩과 비교하여보았더니 색상이 같았습니다. 그래도 인정검사가 처음이고 자신이 없어 업체에서 오신 분을 잠시 기다리시게 하고 사무실로 부품을 들고 와서 대리님에게 확인을 부탁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색상이 같은 것 같습니다.” 했더니 대리님이 이게 왜 색이 같으냐며 전혀 다른 색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뜯어보고 또 봐도 같은 흰색인데 어디가 다르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대리님이 두껍고 큰 색채 견본 책을 저에게 내미시었습니다. 거기에는 수백 개의 명함만 한 크기의 플라스틱 칼라 칩들이 빼곡히 꽂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흰색’이었습니다. 


나는 같은 것을 왜 이렇게 많이 꽂아놓았지? 하고 의아해하고 있는데 대리님이 거기 있는 칼라 칩 중 같은 색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처음에는 신입사원 기죽이려 장난을 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칼라 칩 북을 보니 정말로 색들이 다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같은 흰색이지만 붉은 끼가 들어간 정도, 푸른 끼가 들어간 정도 미묘한 명도의 차이 등등 정말로 같은 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실무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색차계라고 기계가 변별하는 색의 차이보다 숙련된 디자이너의 눈에 의한 색의 변별이 더 정확하고 치밀한 경우가 있습니다.      



디자인의 ‘소’의 세계는 이렇듯 경험을 쌓아가며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능한 ‘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습관은 빠른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을 도와줄 것입니다.     


디자인되는 대상에 따라 이 ‘대’, ‘중’, ‘소’의 비중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크기가 클수록 대의 세계가 중요해집니다. 

자동차, 중장비 등은 우선 눈으로 보아 전체적인 비례, 실루엣 등이 전체적인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개인용 정보기기들과 같이 메이커별로 실루엣이나 재품의 특성상 큰 형태의 차이를 주기 어려운 경우는 정말로 치밀하게 ‘소’의 세계가 중요해집니다. 

정말 작은 색상, 간격 등 치밀하게 작은 부분의 차이가 전체적인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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