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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Apr 03. 2019

조형 창작의 4단계

제6장 디자인조형창작_03

갑자기 질문부터 들어갑니다.     



질문 1. 어린아이와 전문가의 조형 창작은 무엇이 다른가?

조형 창작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닙니다. 실은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됩니다. 3~4세만 되어도 그림을 그리고 종이접기 등으로 무언가를 만듭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디자이너를 전제로 한 조형 창작은 어릴 때 그리고 만들던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질문 2. 이미지 표현의 디자인과 자기표현적 디자인 조형은 무엇이 다른가?

디자인에 대한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디자인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음 디자인은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이해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이해 중에 안타까운 것은 디자인은 전략이며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잘 짜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디자인 조형은 기능에 대한 고려와 함께 어떤 정서(이미지)의 표현이며, 그를 위해 디자인 콘셉트를 형용사 이미지어로 정하고(예, 모던한) 이를 다양한 이미지 조사를 통하여 디자인 조형을 만들 소재를 구해놓고 이를 적당히 조정하여 정했던 이미지(예, 모던한)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어떤 이미지냐가 중요해지고 어떤 이미지를 콘셉트로 하느냐를 알아내기 위하여 소비자나 사용자의 조형적 취향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디자인 전략, 디자인 리서치, 디자인 포지셔닝, 디자인 기획 등을 잘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디자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이 모두 다는 아닙니다. 

위와 같은 철저하게 상업주의를 전제로 한 즉‘팔 기 위한 디자인’인 경우에는 '내'가 아니라 '디자인을 소비할 사람'의 취향이 중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디자인의 대가나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의 취향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며 취향을 이끌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의 디자인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질문 3. 조형을 만드는 순서와 절차가 있을까?

디자인 조형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기 해서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열심히 해야겟지요. 그러나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체력훈련, 기술훈련, 전술훈련, 실전 훈련 등이 필요할 것이며, 또 연령이나 체력조건 수준에 따라 다른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입니다. 좋은 조형가가 되는데 에도 이러한 일련의 훈련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위의 3가지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합니다. 바로 답으로 들어가기 전에 조형 창작의 레벨과 과정을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답을 해보기로 합니다.     



조형 창작의 4단계

야구는 어린이 야구, 중고등학교의 학생야구, 대학이나 실업야구, 프로야구로 구분되어질 수 있습니다. 바둑도 1단, 2단, 3단 등이 있습니다. 

이런 구분은 프로야구선수가 중학생 야구선수보다 잘하고 바둑 6단이 1단보다 잘한다는 등급의 의미도 있습니다. 


조형 창작에도 4가지의 단계로 창작의 레벨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형 창작이라 바둑이나 아마추어와 프로야구 선수처럼 절대적 레벨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둑도 6단이 2단에게 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단지 조형 창작의 최고? 수준을 설명하기 위한 상대적 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단계는 총 4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계별로 관찰(input), 발상(processing), 표현(output)의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조형 창작 1단계 : 그대로 그리기

조형 창작의 첫 단계는 우선은 그대로 그리기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 그리는 그림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그림은 대부분 그대로 그리기입니다. 소묘, 정밀묘사, 인물화, 풍경화 등의 구상작품이 이에 해당합니다. 

우선은 어떤 대상을 그대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무언가를 새로운 것이 생각나더라도 표현할 수 있기에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면서도 중요한 단계입니다. 


조형 창작가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의미 등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조형 전문가인가 아닌가로 구별되는 것이기에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으로 그대로 그리기도 경지에 오르면 그 자체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사실주의 작품들은 거기에 어떤 시각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습니다.

이 그대로 그리기의 단계는 따라서 조형 창작의 기초이면서도 극한으로 올라가면 예술적 조형 창작의 단계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그대로 그리기에서의 관찰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는 것입니다. 자전거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부품들로 이루어지고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자동차의 전체 비례는 어떻고 어떤 부품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등사 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계에서의 발상은 그리 큰 비중이 없습니다. 그대로 그리더라도 자신이 임의의 배치를 바꾸거나 일부의 사물을 강조 혹은 약화하는 경우는 있지마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기에 다른 단계에 비하여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형 표현의 가장 기초적인 원근 등의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표현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것, 그리고 반복 훈련이 중요합니다. 표현하는 수단은 수채, 유화, 연필 등등 매우 다양한 매체가 있습니다. 컴퓨터에 의한 표현도 최근에는 중요한 표현 수단입니다. 다양한 매체를 경험하며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훈련입니다. 


이 단계의 가장 큰 칭찬은 ‘잘 그린다’입니다.     



조형 창작 2단계 : 변형하기

'변형하기'는 관찰된 사물 등의 일부 특징을 추출하여 이를 변형하여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백조를 보고 우아한 선만을 추출하여 그림을 구성한다거나, 박쥐의 형상을 변형하여 배트맨의 상징을 만든다거나, 커리컬처나 크로키처럼 인물을 보고 그 특징만을 추출하여 그리는 것 등을 말합니다. 아이콘을 그리는 것도 일종의 특징을 추출하여 변형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관찰은 ‘특징의 추출’이 중요합니다. 어떤 대상 속에 숨어있는 조형요소나 원리를 잘 파악해내는 것입니다. 백조를 보고 사람마다 추출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이 백조의 특징을 가장 잘 추출하느냐에 따라 이 변형하기의 관찰능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의 발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추출한 특징을 어떻게 변형시킬 것이냐입니다. 

백조를 보고 어떤 요소를 남겨두고 어떤 요소들을 삭제하여 백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느냐 하는 것은 삭제와 남김의 변형입니다. 

혹은 달걀에 가느다란 팔다리를 붙이고 눈과 입을 그려 의인화하는 것은 계란과 인간을 합성하며 변형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를 모티브로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경우도 독수리의 날렵하고 스피디한 특징과 자동차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변형하기 단계는 특징이나 요소들을 어떻게 변형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이 단계의 가장 큰 칭찬은 ‘창의력이 좋다, 아이디어가 좋다’입니다.     



조형 창작 3단계 : 이미지 표현하기

이미지 표현은 일반적인 디자인 수행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계입니다. 

이미지 표현은 말 그대로 정해진 이미지(예, 심플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의 관찰은 정서(이미지)의 관찰입니다. 

예를 들어, 의자를 보고 그 의자가 ‘당당해 보인다.’,‘날렵해 보인다.’는 식으로 어떤 대상이 주는 이미지를 관찰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의 발상은 ‘어떤 정서(이미지)를 줄 것이냐.’를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속도감을 나타내려 할 경우에도, 공기를 엄청난 속도로 가르는 속도감인지, 나풀거리는 나비와 같은 속도감인지,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속도감인지 구체적으로 섬세하고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조형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이 단계의 가장 큰 칭찬은 ‘~게 느껴진다. ~처럼 보인다. ~느낌이 난다’입니다.     



조형 창작 4단계 : 생각 표현하기

이 마지막 단계의 생각의 표현은 조형 창작의 최상위 단계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조형 창작가가 꿈꾸는 단계이며 끝입니다. 


지나지게 조잡하고 질 낮은 장식을 없애고 기계가 생산하기에 적합한 단순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너무나도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도구들이 아닌 낭만적이며 감성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감각적인 자극과 유희를 주며 일회용 같은 사물이 아니라 진중하고 대를 물려 쓰는 물건이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 

사물이 빈부나 사회적 지위를 갈라놓는 상징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등이 모두 이 단계의 생각들의 예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의 관찰은 사물의 생김새나 정서가 아니라 인간이 삶, 사회의 문제, 생활 속의 문제 등입니다. 이러한 사회의 관찰로부터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발상), 이를 조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단계입니다.

이 단계의 가장 큰 칭찬은 ‘멋지다, 새롭다. 공감이 간다’입니다.          



이제까지 조형 창작의 4단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던졌던 3가지 질문에 대하여 이 조형 창작 4단계의 원리를 빌어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답 1. 어린아이와 전문가의 조형 창작은 무엇이 다른가?

유아들은 조형에 대한 해석이 없더라도 매우 유니크 한 그림들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아들이 나름대로의 해석이 없더라도 표현이 미숙하거나 혹은 사물에서 관찰되는 것이 성인과는 달라서 그렇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그 순수성이나 의외성에 감탄을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답 2. 이미지 표현의 디자인과 자기표현적 디자인 조형

디자인에서의 조형 창작은 판매를 전제로 하고 있지마는 그것이 곧 자신이 아닌 타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파악하여 그 대상을 위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지는 않습니다. 

즉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디자인 조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알렉산드로 멘디니 Alessandro Mendini의 와인 오프너(일명 안나)는 그의 해석에 따라 탄생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에는 소비자의 취향이나 성향을 조사하는 부서나 기능이 없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타인의 취향을 맞추느냐 아니면 자기표현을 하느냐는 대중의 사랑을 받느냐 아니냐의 방법이 아닙니다.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자기표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디자인은 안타깝게도 지나친 상업주의적 디자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디자이너의 사회에 대한 견해나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제안보다는 구매자의 성향이나 취향에 맞추고자 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조사, 분석, 전략 수립, 기획 등이 중요한 디자인 행위로 인식되어 학생들도 이를 중시하고 정작 조형 창작은 경시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이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디자인의 사회의식을 감소시키며, 일생에 걸쳐 자신만의 견해와 조형을 찾는 힘들지만 너무나 보람된 길을 걷게 하지 못하고 디자이너를 생산과 판매의 도구로 전락시켜 결국은 디자이너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가 보아왔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새로운 문제의 발견과 인간의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나와야 할 시기입니다.     

답 3. 조형을 만드는 순서와 절차가 있을까?

이는 결국 조형의 4단계가 그 답일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1단계부터 차례로 2, 3, 4단계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 4가지의 단계가 각각 독립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운동선수들은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합니다. 

우선 체력훈련이 있습니다. 오래 달리기, 근력운동, 순발력 향상 운동, 균형감각 훈련 등등 다양한 체력훈련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기술훈련이 있습니다. 축구라면 드리블, 슈팅, 패스, 헤딩 등 축구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는 훈련이겠지요. 

다음으로는 전술훈련이 있습니다. 마치 실전처럼 연습하지만 전 경기를 뛰는 것이 아니라 프리킥이나 코너킥 등의 세트플레이만을 연습한다거나 공수전환 연습을 한다거나 경기에서 사용될 부분에 대한 전술적 연습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전 연습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의 상대와 전력이 비슷한 팀끼리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도 합니다.


이는 조형 창작의 4단계와 유사합니다.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들이라고 하더라도 매일 같이 실전 연습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아무리 프로급의 조형 가라 하더라도 항상 완성하기 위한 작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국가대표급 축구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기초체력훈련, 전술훈련을 항상 같이 병행하듯이 좋은 조형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는 연습과 이미지 표현 연습을 항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초훈련과정이 부실한 상태로 위로 올라가려고만 한다면 자신만의 의미나 사상은 생길 수 있으나 이를 표현하기 위한 몸의 훈련이 부족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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